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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01 등급 분류 받지 않을 권리, 완전등급제의 전제조건
  2. 2007.02.01 독립영화를 향한 두 가지 시선
  3. 2007.02.01 "도그마95", 영화 2세기를 열어젖히는 독단적 아방가르드

등급 분류 받지 않을 권리, 완전등급제의 전제조건

영화정책 2007. 2. 1. 19:52

표현의 자유는 법으로 보호되는 기본적 인권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기본적 인권으로 표현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또한 국제연합에서 정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역시 표현의 자유를 기본적 인권으로 천명하고 있다.  국제조약은 “사람은 누구나 간섭받지 않고 의견을 지닐 권리를 가지”며, “사람은 누구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이 권리에는 구두·필기·인쇄·예술형태·본인이 선택하는 그 밖의 전당수단으로 국경과는 무관하게, 모든 종류의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얻고 전달하는 자유가 포함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의 자유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와 함께 민주주의의 기초가 될 뿐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 발전을 위해서도 기본이 된다.

영화 문화의 다양성과 진흥을 위해서 여러 가지 진흥정책이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단순한 진흥책이란 반쪽에 그칠 뿐일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 우리나라의 영화진흥정책은 표현의 자유에 아직 인색하다.

"영화예술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영화산업의 진흥을 촉진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생활 향상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하기 위해 제정된 현행 영화진흥법은 과거 영화법에 비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제도적 장치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영화의 상영을 위한 '상영등급분류'를 제4장에 규정하고, 제5장 제29조 1항에서 상영등급을 분류 받지 않은 영화의 상영 제한을 명시함으로써 모든 영상 표현물이 상영되기 위해서는 상영등급분류를 받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물론 제21조에서 상영등급분류를 받지 않고도 상영할 수 있는 영화들을 명시해놓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몇 가지 제한된 규정일 뿐, 상영등급분류를 받지 않을 권리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상영등급분류라는 제도가 어느 정도 필요한 제도임을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이 제도는 어디까지나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상영을 전제로 한 영화에 대해 미리 영화의 표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역할을 제대로 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상영 등급분류가 필요한 제도라는 것이 모든 영화가 상영을 위해 등급 분류를 받을 필요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생각보다 쉽게 간과되고 있다.

영화상영등급분류가 온전히 작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만들어지는 모든 영화에 등급을 부여하거나 상영되고자 하는 모든 영화에 등급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서 믿을 수 있는 기관의 적절한 등급 부여를 받을 수도 있는 권리가 있다면 반대로 창작자 자신의 예술적, 정치적 신념에 따라 등급 부여를 받지 않을 권리도 존재한다.

'완전등급제 시행'이라는 표현이 갖는 의미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등급분류체계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등급 받을 권리와 등급을 받지 않을 권리를 모두 포괄해야 마땅하다.  그럴때에야 모두 동의될 때 완전한 등급제도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등급 받지 않을 권리가 인정될 때에야 영화상영등급분류제도는 온전히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단순히 창작자의 창작 과정의 자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표현의 자유는 창작 과정과 그 과정의 결과물인 창작물이 공개되는 과정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화의 상영이라는 창작물 공개 과정에 대한 현행 영화진흥법의 제한 규정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시키는 것이며, 이는 헌법이 규정한 표현의 자유에 위배된다.

현재 우리 사회의 영상물의 표현 자유는 법적인 제한과 함께 경제적 제한이라는 이중의 장벽 아래 갇혀 있다. 문화의 진흥이 표현의 자유에 따른 다양성에 근거 한다면, 영화 예술의 진흥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법적 제약은 없애고, 경제적 제한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영상 문화 진흥을 위한 법, 제도의 개선은 이런 방향 아래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작성 : 2004.03.
게재 : 문화사회 78호

문화연대에서 발행했던 [문화사회] 78호 실은 글.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대한 문제제기를 담은 특집에 함께 담긴 글이었는데,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역시 글은 잘 못쓰는 듯. 문화연대에 관련 글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관련글] 영등위, 심의과정의 혁신 통해 합리적 등급 서비스 제공해야 / 이원재
:

독립영화를 향한 두 가지 시선

독립영화 2007. 2. 1. 18:33

최근 개최된 [인디포럼2004]와 [제3회 미장센단편영화제-장르의 상상력전]은 최근 (독립)영화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어떠하고 그 시선들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독립영화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유추해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두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들은 거의 겹치지 않았으며 영화제릍 바라보는 시선, 영화제를 통해 개별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들도 서로 달랐습니다. 게다가 각각의 영화제를 바라보는 언론의 관심과 관객들의 호응도 역시 매우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이 두 영화제가 애초에 시작된 사정과 운영방식 역시 매우 다릅니다. 인디포럼은 96년 독립영화감독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으며, 올해로 9회 째를 맞은 독립영화 진영의 대표적인 영화제로 자리매김한 비경쟁 독립영화축제이며, 미장센단편영화제는 화장품 제작업체 태평양 미장센의 후원을 받아 충무로 주류감독들이 집행위원회를 구성해 시작된 단편영화제로 출품영화들을 장르로 구분해 상영, 시상하는 경쟁 단편영화제입니다.

이런 사정과 운영방식에 근거해 두 영화제를 거칠게 정리하자면, 인디포럼은 독립영화인 스스로가 독립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 영화제라면 미장센단편영화제는 기업의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주류영화감독들이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새로운 (단편)영화들을 발굴하고 상영하고, 시상으로 격려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두 영화제의 모습과 영화제에 대한 기대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디포럼의 시선 - 독립‘영화’란 무엇인가?

반복하자면 인디포럼의 ‘모토’는 독립영화입니다. 하지만 그 독립영화는 일반적인 독립영화는 아닙니다. 몇 년 째 인디포럼은 최근의 독립영화 ‘담론’이 구체적인 입장 없이 과대해지고 있을 뿐이라고 진단하며, 과연 독립영화가 놓치지 말아야할 것은 무엇인지를 영화제를 통해 발언하려 합니다. 2002년 “꽃순이 칼을 들다”란 슬로건을 통해 독립영화의 정체성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제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인디포럼은 독립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좌표를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함으로써 재구성하고자 하였고, 2003년 “미학선언1-의미의 비종속성”을 슬로건으로 하여 영화의 의미작용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올해는 “보지만 보이지 않고 보이나 믿을 수 없는‘을 슬로건으로 하여 영화를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함으로써 시각매체로서의 영화에 대해 다시 사고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최근 인디포럼이 실험적인 영화에 주목하는 것은 독립영화의 정체성을 앞서의 방법으로 재구성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인디포럼은 미학적 전복과 이를 통한 한국영화의 재구성이 독립영화가 한국 영화의 대안일 수 있는 이유이며, 주요한 존재 가치라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미장센단편영화제의 시선 - 장르영화의 상상력, 단편영화의 즐거움

이에 비해 “장르의 상상력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미장센단편영화제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올해 슬로건인 “단편영화 즐거움을 만나다”는 미장센단편영화제의 입장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사실 미장센단편영화제는 독립영화제를 표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미장센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은 독립영화이기 이전에 단편영화이며, 그것도 장르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졌거나, 구획되어진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르영화를 표방한 미장센단편영화제에게는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초적인 고민은 없습니다. 장르영화를 인정한다는 것은 영화 자체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대중적 호흡을 위해 발전되어온 영화 장르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미장센단편영화제의 관심은 이 ‘장르’를 단편영화들이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인 것입니다.


새롭고 신선한(?) 독립영화

이런 미장센단편영화제의 영화들이 인디포럼의 영화들보다 대중들에게 더 친근하게 느끼고 자유롭게 느껴지고 사랑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실제로 올해 인디포럼과 미장센단편영화제는 관객들의 호응에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인디포럼2004에는 몇 년 사이 가장 적은 관객이 영화제를 다녀간 반면, 2회까지 진행했던 공간을 벗어나 아직 인지도가 부족한 공간으로 행사장을 옮긴 미장센단편영화제는 여전히 많은 관객들이 상영관을 찾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언론의 관심 역시 미장센단편영화제에 더 집중되었습니다.

비슷하긴 하지만 두 영화제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좀 더 다른 시선들도 있습니다. 미장센단편영화제는 자유로운 반면, 인디포럼은 경직되어 있다거나, 미장센단편영화제는 쉽고 재미있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반면 인디포럼은 어렵고 재미없으며 관객(과 독립영화인들)을 가르치려 하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그러할 수도 있습니다. 행사 진행 과정에서 어느 한쪽이 좀 더 유연한 태도를 취했을 수도 있으며, 좀 더 여유로운 관람 서비스를 제공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독립영화인의 입장에서 두 영화제를 비교하면서 생각했던 것은 현재 독립영화가 처한 좌표가 어디이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것이었습니다.

혹시나 미장센단편영화제에 대한 관객의 호응과 언론의 집중된 관심이 (독립이든 단편이든)비주류 영화(들)의 존재를 주류영화와는 다른 ‘존재’로서의 가치로 보는 것이 아니라 프로페셔널한 주류영화와는 다른 풋풋하고 때묻지 않은 색다른 재미를 주는 영화들로 보거나 아니면 주류영화 산업에 새로운 인력을 제공함으로써 기여하는 영화만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인 아닌가하는 걱정이 슬며시 들었습니다. 만약 미장센단편영화제에 대한 이러한 기대가 독립영화에 대해 가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독립영화를 주류산업영화와는 다른 새롭고 신선한 영화라고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새로움과 신선함은 단순히 주류영화의 기성 감독이 아닌 신인의 영화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거나 못만들어도 프로페셔널하지 않아 풋풋하고 신선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독립영화의 새로움과 신선함은 주류 영화에서 다루지 않는(혹은 못하는) 소재를 다루기 때문에 신선하고, 영화 속 소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며, 영화라는 매체를 단순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에 대해 질문하며, 그 역할에 대해 서 질문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족입니다만 최근 대기업의 후원으로 개최되는 단편영화들이 “독립영화로서의 단편영화”가 가졌던 많은 것들을 거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근심이 됩니다. 독립/단편영화제들을 통해 만나게 되는 영화들이 주류영화를 보며 던지게 되는 것 이상의 질문들을 하게 할 때, 그리하여 영화의 다른 가치들을 고민하게 할 때 진정 “최초의 영화는 단편영화다”라거나 “단편영화는 영화의 미래다”라는 선언들이 단순한 수사학으로 그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작성 : 2004.06.25.
게재 :
컬쳐뉴스
:

"도그마95", 영화 2세기를 열어젖히는 독단적 아방가르드

TRACE 2007. 2. 1. 18:09

도그마는 현재 영화의 어떤 경향에 도전한다.

1995년 3월 13일 화요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도그마 95라는 종교적 이름의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이 선언문과 함께 발표된 순결의 서약은 '감독의 이름은 크레딧에 오르지 않는다, 촬영은 반드시 로케이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등의 10가지 계명을 포함하고 있다. 이 선언을 주창한 사람은 <범죄의 요소>, <유로파> 등으로 깐느의 기술공헌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스타일리스트였던 라스 폰 트리에, 그와 함께 토마스 빈터베르그, 크리스찬 레브링, 소렌 크라이 야콥슨 이렇게 네명의 감독이 이선언에 동참하였다.

라스 폰 트리에 자신의 이전 필모그라피를 부정하는 듯한 이 선언문이 동참을 바라며 각국의 '영화 작가'들에게 보내졌을 때, 그들은 이 원칙대로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 그리고 원칙대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지를 의심하였다. 더구나 도그마95는 '현대 영화의 바다고 강물'이라는 프랑스 누벨 바그를 '해변으로 쓸려버릴 정도의 잔물결이 되어 허접 쓰레기 오물로 변해 버렸음'을 선언하며 정면으로 비판하고, 감독의 이름을 크레딧에 올리지 않는다는 상징으로 누벨 바그의 기초이론이었던 '작가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도그마 집단은 "나는 감독으로서 개인의 취향을 자제할 것을 맹세하며 더 이상 작가/아티스트가 아님"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도그마 95의 형식을 지배하는 순결의 서약은 누벨바그 영화 양식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누벨바그 세대들의 영화는 기승전결 식의 양식화된 구성에서 벗어나려 했고, 저항과 변화를 전제로 기존의 문화 관습과 패러다임을 탈피한 영화들을 만들었다. 영화 형식에 있어서도 현장감 넘치는 핸드헬드촬영, 휴대용 동시녹음기의 사용, 자연광만으로 촬영 가능한 고감도 필름의 사용과 줌 랜즈의 사용, 비전문 배우의 기용, 그리고 영화 속의 문학, 사상, 예술서 등의 직접인용, 자막 사용, 화면 밖 나레이터 등장으로 브레히트의 '소외 효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누벨 바그와 도그마95는 영화 형식적으로는 차이가 있기보다는 오히려 유사한 부분이 많은 것이다. 도그마 집단은 누벨 바그의 어떤 부분을 비판하였던 것일까?

누벨바그와 도그마95가 갈라서는 지점은 작가에 대한 것이다.


누벨바그, 1960년대는 이제 너무나 충분하다.

1959년 장 뤽 고다르의 <네멋대로 해라>가 등장하기 이전, 혹은 1952년 프랑수아 트뤼포가 <까이에 뒤 씨네마>에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을 발표하기 이전 프랑스 영화는 "영화적으로 예술적"이지 못했다. 트뤼포의 표현에 의하면 기존의 프랑스 영화는 문학적인 기질을 지닌 시나리오작가들의 취향에 휘둘리고 있었으며, 누가 감독을 하더라도 그것은 시나리오 작가의 영화이지 감독의 영화가 아니었다. 이들의 영화는 고상한 듯 보이지만 시각적으로 진부한 '질의 전통'을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이런 문학적인 '질의 전통'의 영화가 된 이유는 토키의 발명이었다. 사운드의 도입은 무성영화 시대 이후 아방가르드 영화들이 개발한 풍부한 시각적 표현력을 훼손시켰지만 19세기 유럽의 리얼리즘 소설이 정교한 이음매 없는 핍진성의 창출을 가능하게 하였다.

내러티브와 영화의 결합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내러티브 영화의 우위는 유럽에서가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먼저 활성화되었다. 유럽의 영화가  이 1차대 전에 의해 정체되고 있을 무렵 미국은 내러티브 영화가 가진 대중 오락물로서의 유용성에 주목하였다.

1차 대전 이후 미국 영화의 상업적 우위와 사운드의 도입은 할리우드적 리얼리즘 영화의 우위를 가져왔고 유럽의 모더니스트들에게 이미지의 예술로 비춰졌던 영화는 서사물로서의 리얼리즘, 미국의 장르영화 등은 모두 19세기 유럽 리얼리즘 소설이 확립한 고전적 내러티브에 따라 시공간을 조직하고 있었다.

2차대전이 종결된 이후 유럽의 영화산업은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고,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세계지배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누벨 바그 세대들이 영화를 보았던 40년대 후반의 유럽은 미국영화가 넘쳐 났고,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영화는 미국의 소비 자본주의의 천박한 문화적 상징이 되었다. 영화는 더 이상 예술이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영화가 기존 예술의 예술을 극복하고 새로운 예술이 될 수 있으리라는 프랑스 아방가르드 전통과 독일 신칸트학파의 기대가 무너져 버린 상황에서 예술로서의 영화에 대한 주장은,'창조성, 천재성, 영원한 가치와 비밀을 가진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작가를 설정하는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예술개념에 기대게 된다. 1948년 프랑스의 영화감독 알렉상드로 아스트뤽은 <카메라 만년필>이라는 글에서 '영화의 스타일은 영화의 소재와 그 소재를 수용하는 영화작가의 주관적인 태도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하며 영화작가는 소설가와 같은 기능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영화작가에게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부여할 것을 요구하는 이 주장은 트뤼포의「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글에 의해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트뤼포를 위시한 <까이에 뒤 씨네마>의 영화동료들은 '작가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영화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작가주의자들은 작가의 개념을 미장센의 개념과 깊게 연결시킴으로써 발전시키는데, 그것은 트뤼포를 위시한 젊은 작가주의자들이 30 - 40 연대 할리우드 영화에 열광하였던 것에서 기인한다. 2차대전 당시 상영 금지되었던 미국 영화들이 갑자기 프랑스 극장을 점령하게 되고, 어린 시절을 알프레드 히치콕, 하워드 혹스, 존 포드 등이 만든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지낸 그들은 단순한 오락물로 취급받았던 이들의 영화에서 스튜디오 시스템 아래 만들어진 이들 영화의 내용이 아닌, 공통적인 스타일에서 어떤 창조적인 정신을 발견한다. 작가주의자들은 영화의 감독들에게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려고 했고, 내용이 아닌 씬의 구성/미장센에 드러나는 스타일에서 감독의 개성을 찾아내려 하였던 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노력은 대중 오락물로 전락한 영화에 천재의 창조성이란 낭만주의 작가개념을 부여하여 영화에 아우라의 광채를 덧씌움으로써 영화를 예술로 승화시키려고 한 것이다. 트뤼포에게 작가는 전체적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한다기보다 어떤 세계관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작가는 전체적으로 부패한 사회 내부에서 인간적인 가치의 낙관적인 측면을 표현할 줄 안다. 위대한 작가의 작품 속의 인물들은 그 자신의 정신적인 노력으로 세속적인 상태를 벗어난다. 트뤼포는 작가주의야 말로 영원한 진리로의 회귀이고 낭만주의라는 프랑스의 고전적인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예술에 대한 낭만주의적 관념에 깊이 의존하고 있는 트뤼포의 작가개념은 예술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을 의문시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기존의 예술개념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던 누벨바그 이전 아방가르드의 예술관에 비해서도 퇴행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이 작가주의는 미국의 평론가 앤드류 새리스에 의해 좋은 영화, 혹은 위대한 감독이 만든 정전과 그렇지 않은 것들로 영화를 재단하는 하나의 이론체계로 격상되었다.

새리스는 미국영화만을 '유일하게 좋은 영화'로 끌어올린다는 민족주의적이고 쇼비니즘적 목적으로 작가주의를 이용했고, 급기야 주류에 대한 문제제기로 등장했던 작가주의는 또 하나의 주류가 되어 영화의 예술적인 완성도를 '작가'라는 신비한 기준으로 수직계열화하게 되었다. 그러나 작가주의는 어떤 하나의 감독을 '작가'로 인정하느냐 마느냐하는 문제가 평가자의 주관적 기호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뛰어난 작가의 그저그런 작품을 평범한 감독의 뛰어난 영화보다 높이 평가해야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1980년대 이후 구조주의/포스트구조주의와 같은 반인간주의적인 이론이 등장하여 '주체로서의 인간의 죽음'을 선언하자 작가의 주체적 창조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 작가주의는 그 기반이 흔들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작가주의가 이론적으로 유효한 비평방법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작가주의자들이 근대 예술 개념의 본질을 짚어냈기 때문이다. 예술의 개념이 불안정하고, 보편적 예술의 기준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예술을 예술로 재생산하는 것은 자율적 체계로서 근대 예술 제도이다. 근대적 예술제도는 예술의 기준으로 '창조성, 천재성, 영원한 가치와 비밀을 가진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작가를 설정하게 되는데, 이 제도 속에서 작품 이면에 존재하는 역사성이나 현실성은 지워져 버리고 위대한 작가와 그의 작품만이 초역사적으로 남게 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작품이 아니라 작가이며, 근대 예술제도는 작가에게 종교적인 후광을 가진 성자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작가주의 미학 속에서 영화는, 발터 벤야민이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영화가 근대 예술의 특징인 아우라가 부재하고 그로 인하여 교양계층의 엘리트를 위한 예술이 아니라 그야말로 대중의 예술로서 근대 예술의 신비적 측면을 탈신비화할 것'이라는 기대와, 레닌이 '모든 예술 중에서 영화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며 영화가 부르주아의 예술과는 다른, 새롭게 지배계급이 된 프로레탈리아의 예술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며, 다시 부르주아의 예술로 복귀하게 된 것이다.


아방가르드라는 개념은 더욱 중요해진다.

영화의 초창기에는 미래의 예술로서 다양한 기대가 존재한다. 근대 예술의 개념이 도전하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영화 매체에서 낡고 속물화된 기존 예술을 대체할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보았다. 러시아 혁명 직후 그리피스의 <인톨러런스>를 본 레닌은 영화에서 부르주아 예술을 대신한 프롤레탈리아트 예술의 가능성을 보았고, 발터 벤야민의 주장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었다.

아방가르드는 기존 예술의 본질을 구성하는 형식과 개념을 의심하고 해체한다. 즉, 아방가르드는 근대 예술 제도가 확립해 놓은 자율적 영역으로서의 예술을 의심하고 새로운 예술 수단과 새로운 표현 형식을 찾아내어 기존 예술의 관념을 내파하려 한다.

20세기초 아방가르드 운동은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서의 영화가 가진 혁신적 가능성에 주목하였고,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독일의 표현주의 그리고 20년대 소비에트 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정점을 이루었다. 그러나 스탈린 체제 이후 소비에트 영화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대체되고, 앞서 언급했듯 토키의 발명과 불안한 정치적 상황은 아방가르드 운동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아방가르드는 작가주의자에게 자리를 내어 주게 되었다.

영화가 만들어진 지 100년인 1995년 '도그마 95'는 다시 아방가르드를 불러 세운다. 부르주아가 되어 버린 누벨 바그 영화 미학과 테크놀로지의 태풍이 몰아치는 오늘날 영화들 앞에서 그들은 화장술을 벗어버리고 환상이 아닌 영화를 만들 것을 서약한다. 도그마 95와 함께 발표된 순결의 서약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규칙들로 영화 원형의 모습들을 복원하려 한다. 도그마 95는 영화의 근대 예술적 지위를 해체하는 아방가르드 정신으로 무장해 영화 2세기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히고 있다.

★ DOGME 95 The Official Web Site http://www.dogme95.dk/


작성 : 1998년 여름 어느날.
"Dogma95" 의 #1 <셀레브레이션>, #2 <백치들>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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