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 분류 받지 않을 권리, 완전등급제의 전제조건

영화정책 2007. 2. 1. 19:52

표현의 자유는 법으로 보호되는 기본적 인권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기본적 인권으로 표현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또한 국제연합에서 정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역시 표현의 자유를 기본적 인권으로 천명하고 있다.  국제조약은 “사람은 누구나 간섭받지 않고 의견을 지닐 권리를 가지”며, “사람은 누구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이 권리에는 구두·필기·인쇄·예술형태·본인이 선택하는 그 밖의 전당수단으로 국경과는 무관하게, 모든 종류의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얻고 전달하는 자유가 포함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의 자유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와 함께 민주주의의 기초가 될 뿐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 발전을 위해서도 기본이 된다.

영화 문화의 다양성과 진흥을 위해서 여러 가지 진흥정책이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단순한 진흥책이란 반쪽에 그칠 뿐일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 우리나라의 영화진흥정책은 표현의 자유에 아직 인색하다.

"영화예술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영화산업의 진흥을 촉진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생활 향상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하기 위해 제정된 현행 영화진흥법은 과거 영화법에 비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제도적 장치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영화의 상영을 위한 '상영등급분류'를 제4장에 규정하고, 제5장 제29조 1항에서 상영등급을 분류 받지 않은 영화의 상영 제한을 명시함으로써 모든 영상 표현물이 상영되기 위해서는 상영등급분류를 받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물론 제21조에서 상영등급분류를 받지 않고도 상영할 수 있는 영화들을 명시해놓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몇 가지 제한된 규정일 뿐, 상영등급분류를 받지 않을 권리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상영등급분류라는 제도가 어느 정도 필요한 제도임을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이 제도는 어디까지나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상영을 전제로 한 영화에 대해 미리 영화의 표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역할을 제대로 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상영 등급분류가 필요한 제도라는 것이 모든 영화가 상영을 위해 등급 분류를 받을 필요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생각보다 쉽게 간과되고 있다.

영화상영등급분류가 온전히 작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만들어지는 모든 영화에 등급을 부여하거나 상영되고자 하는 모든 영화에 등급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서 믿을 수 있는 기관의 적절한 등급 부여를 받을 수도 있는 권리가 있다면 반대로 창작자 자신의 예술적, 정치적 신념에 따라 등급 부여를 받지 않을 권리도 존재한다.

'완전등급제 시행'이라는 표현이 갖는 의미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등급분류체계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등급 받을 권리와 등급을 받지 않을 권리를 모두 포괄해야 마땅하다.  그럴때에야 모두 동의될 때 완전한 등급제도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등급 받지 않을 권리가 인정될 때에야 영화상영등급분류제도는 온전히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단순히 창작자의 창작 과정의 자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표현의 자유는 창작 과정과 그 과정의 결과물인 창작물이 공개되는 과정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화의 상영이라는 창작물 공개 과정에 대한 현행 영화진흥법의 제한 규정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시키는 것이며, 이는 헌법이 규정한 표현의 자유에 위배된다.

현재 우리 사회의 영상물의 표현 자유는 법적인 제한과 함께 경제적 제한이라는 이중의 장벽 아래 갇혀 있다. 문화의 진흥이 표현의 자유에 따른 다양성에 근거 한다면, 영화 예술의 진흥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법적 제약은 없애고, 경제적 제한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영상 문화 진흥을 위한 법, 제도의 개선은 이런 방향 아래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작성 : 2004.03.
게재 : 문화사회 78호

문화연대에서 발행했던 [문화사회] 78호 실은 글.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대한 문제제기를 담은 특집에 함께 담긴 글이었는데,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역시 글은 잘 못쓰는 듯. 문화연대에 관련 글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관련글] 영등위, 심의과정의 혁신 통해 합리적 등급 서비스 제공해야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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