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의 미학, 그 순수한 응시
독립영화 2007. 1. 31. 13:38요즘 독립영화 진영에서는 영화 미학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독립영화의 미학이 아닌 그냥 영화 미학에 대한 이야기가 말입니다. 이야기의 접근 방식은 자본주의적인 메커니즘 안의 영화에서는 ‘영화는 무엇인가’라는 되물음 - 다르게 표현하자면 보편적으로 사고되는 ‘영화적이라는 개념에서 반(反)영화’를 고민하는 영화 미학 - 이 결코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데 비해 적어도 독립영화라는 개념에서는 그 논의가 유효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독립영화 진영에서 영화미학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혹시나 오해 하실까봐 다시 말씀드리자면, 그 논의는 ‘독립영화의 정신은 무엇인가’라는 식의 독립영화에 한정된 논의가 아닙니다. 독립영화라는 수단을 통해서 ‘영화 혹은 반(反)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영화 일반에 대한 되묻는 것이며, 이런 미학 논의를 통해서 다시 독립영화가 운동으로서 온전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부각시키겠다는 전략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영화미학 논의에서 주요한 화두로 지목되고 있는 것은 일명 ‘연속성의 관습과 소통에 대한 편견’을 해체하는 것입니다.
'연속성 관습의 해체'란 단선적인 이야기, 그럴듯한 인과관계로 포장되는 관습적인 영상언어를 반대하고 진부함을 벗어나는 것이고, '소통에 대한 편견의 해체'란 근원적으로 인간에게 있어 소통은 불가능하거나 불가능에 가까운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구체적인 이야기에 함몰되어 있는 이미지를 해방시켜 영화를 언어적 사고체계의 간섭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것이며, 의미의 전달이라는 폭력에서 벗어나 더 넓은 차원의 의미를 표현할 영화의 가능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찌 보면 ‘코미디 영화 위주로 흘러가는 한국영화에 다양한 영화의 흐름이 필요하다’는 식의 논의처럼 비치기도 하겠지만, 이들이 주장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다양성의 확보는 절대 아닙니다.
이들의 논의는 예술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벗어나 예술이라는 말이 담보하는 열린 사유와 그로 인해 가능해질 반자본주의적 태도들을 다시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이미지로서의 영화의 가능성을 추동해 내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주류 영화의 관습적 표현과 소통에 대한 오해 뿐 아니라 기왕의 영화에 대한 해체를 통해 고정된 양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고, 다시 말해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태도들은 물론 포괄적인 보수진영과 전면전을 치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야말로 ‘자본으로부터, 사회, 정치제도로부터 그리고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이라는 독립영화에 내려진 우회적 정의를 피하고 ‘독립영화적인 정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훨씬 더 핵심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빠른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이쯤 이야기하면 이들의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대충은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잘모르겠다는 이가 계실지도 모르겠는데, 너무 그러실 것 없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나도 대충은 이해할 것 같지만 어떤 부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이미지 중심의 영화를 사고해야한다는 이야기에 붙어 나오는 ‘사천 년 언어 역사의 끝에 등장한 영화는 … 오랫동안 언어에 고착되었던 텍스트 중심적인 사고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킬 방법을 제시한다’라거나 ‘언어를 거치지 않고, 언어화될 수 없음을 불안해하지 않고, 현상을 날 것으로 인식하게 할 가능성, 총체적으로 사고하게 할 가능성’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언어로부터 해방이면 혹시 라깡의 상징계 이전의 상상계로 돌아가자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무의식도 언어로 구성되어있다는데 언어를 거치지 않고 인식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하는 등의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스스로 라깡이나 정신분석학에 대해 잘 모르면서 괜히 꼬투리 잡는 꼴이 될까봐 일단 접어둘까 합니다.
사실 내가 이들의 이야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은 ‘이들의 입장대로 영화미학을 세우는 것이 과연 반자본주의적 혹은 반부르주아적인 것일까’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입장을 살펴보면 이들이 영화를 구분하고 있으며, 이 중 특정한 한 부류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거부하는 것은 바로 ‘대중적’인 영화입니다. 이들은 대중영화가 제공하는 자명성과 투명성 그리고 안락성을 거부하며, 예술로서의 영화를 채택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들은 민중에게 제공되는 대중영화들이 알튀세가 말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처럼 작동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대중영화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은 그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영화언어의 방식이며,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이해가 가능하다는 폭압적인 믿음이라고 정리하는 듯 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계급들은 서로 다른 능력과 성향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한 영화를 파악하는 것, 이들의 표현대로 말하면 사유로서의 영화를 알아보는 지각 양식의 차이는 이러한 특정한 성향에 근거합니다.
이 지각양식의 차이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시선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차이는 각자가 처한 사회적 출신배경, 교육자본 등의 경제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런 차이에 의해 각 계급들의 문화적 취향과 문화적 실천은 다르게 구분됩니다. 그리고 이런 문화적 실천행위의 차이는 궁극적으로 기존의 계급구조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나는 자명성과 투명성에 대한 거부를 통해 대중적인 것을 정당하지 못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깔려 있는 이들의 입장이 다른 태도의 특권화로 귀결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설사 영화미학을 바라보는 이들이 반자본주의, 반부르주아를 주장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분류는 위계화로 이어지며, 앞서 지적했듯 사회적, 문화적 구별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계급의 차이를 효과적으로 재생산해내는 역할로 귀결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미학 논쟁은 이제 첫걸음을 떼었을 뿐입니다. 이들의 입장은 앞으로 구체적인 맥락 위에서 더욱 정교화될 것이며,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가 독립영화는 물론 한국 영화 논의의 전반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 첨부
한국독립영화협회가 발행하는 계간 『독립영화』에나 어울릴만한 글을 『무빙 이미지』에 뜬금 없이 싣는 것 같아 조금 죄송하기도 합니다. 이들의 입장에 대한 더 자세한 글들은 계간 『독립영화』13호, 14호, 16호와 독립영화제 [인디포럼 2002] 메인 카탈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게재 : <무빙 이미지> 200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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