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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01 독립영화전용관, 독립영화의 안정적 상영/배급을 위한 전제 조건
  2. 2007.02.01 영화진흥정책의 새로운 방향성
  3. 2007.01.31 독립영화의 미학, 그 순수한 응시

독립영화전용관, 독립영화의 안정적 상영/배급을 위한 전제 조건

독립영화 2007. 2. 1. 16:32

영화제라는 이벤트를 통해 본 전용관의 필요성

지난 4월 9일 폐막한 서울여성영화제를 시작으로 영화제라고 불리는 이벤트들의 2004년 러시가 시작되었다. 4월 23일부터는 전주국제영화제가, 5월엔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와 인디포럼이 개최된다. 거의 매월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개최되어 영화관객들에게 새로운 영화들을 대거 선보이는 것이다. 영화제라는 이벤트는 상업적인 일반 극장가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에 식상한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화를 선사하는 기회이다. 국제영화제들은 영화제의 의제에 맞춰 동시대의 새로운 영화들과 중요한 영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국제영화제는 상업성 없음 등의 여러 이유로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어 상영하지 못하는 많은 외국의 영화들을 관객들이 볼 수 있는 기회이며, 시장에서 쉽게 소개되지 못하는 한국 영화들을 선보이는 기회이고, 이미 공개된 영화들을 재평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독립영화 진영에게도 영화제라는 이벤트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상업적 극장 배급에서 소외된 독립영화들은 관객과 만나는 접점을 오래 고민해 왔고, 극장 배급의 대안적(?) 형태로 영화제라는 이벤트를 선택했다. 개별 영화의 인지도로 관객에게 다가가는 대신 하나의 이벤트로 관객에게 다가가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여왔던 것이다. 독립/단편영화제의 숫자는 제작되는 독립영화의 수가 많아지면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주제별, 지역별 독립/단편영화제들의 확대는 더 많은 지역에서 더 많은 관객들에게 독립영화를 상영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과거보다 더 많은 영화들이 영화제를 통해 노출되고 있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런 영화제들을 통해 동시대의 독립영화들을 개괄하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독립영화에게 있어 영화제는 영화를 소개하는 일종의 배급형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다.

독립영화제, 고비용 저효율의 축제

하지만 독립영화 진영에게 영화제라는 이벤트가 그렇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관객들에게 독립영화를 보여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하더라도 영화제는 그야말로 일시적인 이벤트에 불과하다. 이벤트 자체로는 결코 안정적인 상영/배급 구조를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독립영화가 한 공간에서 개봉형식으로 상영되는 것보다 영화제라는 형식을 빌어서 소개할 때 더 많은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온 경험들은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영화제라는 방식이 부적절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봉되는 주류영화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단순히 상시적으로 극장에서 상영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개봉되는 개별 영화들은 제작비의 절반에 육박하는 비용을 들인 적극적인 홍보/마케팅에 의해 잠재 관객들에게 노출되어지고 그 결과로 관객을 모으는 것이라면, 개별 영화들의 홍보/마케팅이 비용 등의 문제로 불가능한 현재 독립영화 상황에서 영화제라는 아이템이 오히려 더 효율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 이벤트’라는 영화제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너무 강조할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개최되는 수많은 국제영화제와 독립/단편영화제들을 어떻게 활용하여 독립영화를 더 잘 소개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더 생산적인 고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독립/단편영화제들의 현실을 고려해 본다면 이런 입장은 너무나 낙관적인 전망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대기업의 후원으로 개최되는 몇 개의 단편영화제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독립/단편영화제들은 안정적인 재정 구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나마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단체사업 지원 사업 등을 통해 예산의 일부를 충당하고 있지만, 지원액이 행사 전체 예산에 턱없이 부족하다. 다른 공적 기금이나 기업의 후원/협찬을 받더라도 그 지원이란 행사를 넉넉하게 추진하는 데는 미치지 못한다. 이런 경우 부족 예산을 충당하는 방법은 대부분 인건비 삭감을 통해 채워진다. 그나마 이런 부가적인 지원을 아예 받지 못했다면, 인건비 항목은 지출 예산 항목에서 애초에 삭제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재정의 불안정은 행사 준비와 진행을 불안정하게 함은 물론이고, 안정적인 인력 구성을 애초에 불가능하게 만든다.

독립영화제니까 인건비에 대한 보상보다는 독립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행사를 준비한다고 해도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최소 예산으로 안정적인 행사를 진행할만한 공간의 부족은 행사 시기와 장소를 들쭉날쭉하게 만든다. 이렇게 고정되지 못하는 장소와 개최 시기는 관객들에게 영화제를 안정적으로 각인 시키는데 한계로 작용한다.

더 큰 문제는 영화제에 의해 선택되어 상영되는 수십 편의 영화들이 모두 관객의 관심을 받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상영될 영화들 중에서 영화제의 홍보를 위해 선택되어지는 소수의 영화들과 상영을 하며 그나마 관객에게 ‘발견’되어지는 몇 편의 영화들을 제외한 나머지 영화들은 그저 상영기회를 한두 번 가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게다가 영화제에서 ‘발견’된 영화라고 해도 처지가 그리 다르지도 않다. 영화제 이후 상영 기회가 제대로 없기 때문에 다른 영화제의 선택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제의 긍정적인 의미들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이벤트의 의미를 안정적으로 유지 확대시킬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벤트를 통해 획득된 관심은 그 이벤트 안에서 상쇄될 뿐인 것이다.

독립영화 배급 인력 양성을 위해서도 전용관이 필요하다

독립영화를 상설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극장의 필요성은 그간 수없이 제기되어 왔다. 독립영화를 안정적으로 상영할 공간으로서도 필요하고, 독립영화를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할 영화제들을 안정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하며, 이벤트가 가져올 긍정적 의미들을 안정적으로 확대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독립영화 전용관이 필요한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독립영화의 배급을 안정적으로 획득해 낼 인력 양성을 위해서다. 이벤트로서 영화제는 독립영화 상영기회의 확대를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독립영화 배급 인력을 안정적으로 양성해내지 못한다. 앞서 언급한 독립영화제들의 불안정한 재정구조는 영화제의 인력의 연속성조차 담보해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상설상영관을 통한 배급 인력의 확보는 독립영화의 안정적 배급을 구성하는데 무엇보다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제작지원 위주의 독립영화 진흥 정책도 의미 있는 것이지만, 제작과 배급을 아우르는 진흥 정책으로의 전환은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런 노력은 단순히 독립영화의 DVD 제작 지원이나 몇몇 영화의 홍보/마케팅비 지원, 그리고 예술영화 전용관 지원의 형태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상설 상영관 설립은 독립영화의 진흥을 위한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걸음이 될 것이다.


게재 : 컬쳐뉴스
작성 : 2004.04.20.
2004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 발행하는 컬쳐뉴스에 연재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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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정책의 새로운 방향성

영화정책 2007. 2. 1. 16:20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지난 2004년 2월 3일, ‘2004년 영화진흥사업’을 발표하면서 2004년의 본격적인 영화진흥사업들을 시작했습니다. 2004년 영화진흥사업은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운영 ▶아트플러스 시네마 네트워크(예술영화전용관) 운영 ▶시네마테크 지원 등 영진위가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사업과 공모사업으로 추진되며, 2004년의 공모사업은 국내진흥사업 25개, 해외진흥사업 4개, 학술지원사업 3개, 영화인 교육사업 5개 과정, 종합촬영소 운영 및 기술사업 2개 등 총 39개의 사업이 발표되었습니다. 사업이 예년에 비해 확대되었는데, 기존의 추진 사업들을 재조정하고 세분화하였으며, ▶방송용영화(Telefilm)제작지원 ▶예술영화마케팅지원 ▶디지털영화마케팅지원 ▶디지털장편영화 직접영사방식 상영지원 ▶DVD제작지원 ▶독립애니메이션 필름전환지원 ▶공동제작영화 제작지원과 ▶세트제작 현물지원사업 등 8개의 공모 사업이 신설되었습니다. 신규사업들을 통해 영화와 방송과의 통합성 확보와 다양한 한국영화의 배급 지원을 확대한 점은 특기할만하고, 변화하는 영화 환경에 따라 진흥정책을 조정한 것 역시 긍정적이라고 평가할만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영화진흥정책이 한국 영화 진흥을 위해 가장 적절한 형태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영화진흥정책이 영화진흥금고에 근거한 영진위의 직접 지원에 한정되어 있음이 과연 적절한가하는 점은 향후 영화진흥정책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기 위해 필요해 보입니다. 그리고 기왕의 골격이 유지된 채, 몇몇 사업들을 조정하고 신설하는 것이 변화하는 환경을 적절하게 수용한 정책 방향인가도 검토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 제기한 영화진흥정책의 방향에 관한 문제는 뒤로 미루기로 하고 오늘은 2004년 영화진흥정책이 담고 있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현재 영화진흥정책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는 개별 사업 하나하나를 지적하는 것보다 각종 사업들이 발의되고 진행되는 형태에 대한 검토가 선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영화진흥사업의 추진 형태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제도가 각종 지원 대상들을 거꾸로 강제할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필요한 사업들을 매년 새롭게 발굴하는 것과 지원제도를 공정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개별 사업들의 추진 일정, 구체적인 지원 대상, 지원 조건 등을 구체화하는 것은 일면 타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 제기된 사업들이 영화제도 안에서 상호연관을 가지고 작동하기 보다는 나열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과 개별 사업들이 연중 1회 내지 2회 진행되며 시기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은 개선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지원과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지원 대상과 조건을 사업별로 구체화하는 것도 개선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정책은 지원 받고자 하는 창작물과 창작행위가 어쩔 수 없이, 세분화된 정책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제하고, 그 선택한 사업의 지원 조건에 모양새를 맞추고  기획을 사업 추진 일정에 맞추게 합니다. 이는 지원을 해주기 위한 개별 사업의 지원 대상과 조건이 역설적이게도 일종의 규제처럼 작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공적인 지원에 있어 그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 확보의 중요성을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사업 자체의 완결성보다 지원이 필요한 대상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효과에 대한 고려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책 수립에 있어서도 현재의 창작행위나 창작물을 견인하며 육성하는 것을 주요한 방향으로 설정할 수 있겠지만, 규정할 수 없는 창작물과 창작행위를 진흥하는 지원 정책이라면 창작자의 상상력이 필요이상으로 제어되지 않도록 자율성을 확대하는 쪽으로 개선해 가는 것이 더욱 필요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영화진흥 정책은 단순한 세분화와 사업의 신설보다 기획, 제작, 배급, 상영을 아우르는 영화제도를 관통하는, 그리고 그런 전제 아래서 좀 더 일상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도록 재편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야 더욱 자유로운 창작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게재 : 컬쳐뉴스
작성 : 2004. 03. 16.
2004년에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 발행하는 컬쳐뉴스에 연재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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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의 미학, 그 순수한 응시

독립영화 2007. 1. 31. 13:38

요즘 독립영화 진영에서는 영화 미학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독립영화의 미학이 아닌 그냥 영화 미학에 대한 이야기가 말입니다. 이야기의 접근 방식은 자본주의적인 메커니즘 안의 영화에서는 ‘영화는 무엇인가’라는 되물음 - 다르게 표현하자면 보편적으로 사고되는 ‘영화적이라는 개념에서 반(反)영화’를 고민하는 영화 미학 - 이 결코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데 비해 적어도 독립영화라는 개념에서는 그 논의가 유효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독립영화 진영에서 영화미학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혹시나 오해 하실까봐 다시 말씀드리자면, 그 논의는 ‘독립영화의 정신은 무엇인가’라는 식의 독립영화에 한정된 논의가 아닙니다. 독립영화라는 수단을 통해서 ‘영화 혹은 반(反)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영화 일반에 대한 되묻는 것이며, 이런 미학 논의를 통해서 다시 독립영화가 운동으로서 온전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부각시키겠다는 전략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영화미학 논의에서 주요한 화두로 지목되고 있는 것은 일명 ‘연속성의 관습과 소통에 대한 편견’을 해체하는 것입니다.

'
연속성 관습의 해체'란 단선적인 이야기, 그럴듯한 인과관계로 포장되는 관습적인 영상언어를 반대하고 진부함을 벗어나는 것이고, '소통에 대한 편견의 해체'란 근원적으로 인간에게 있어 소통은 불가능하거나 불가능에 가까운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구체적인 이야기에 함몰되어 있는 이미지를 해방시켜 영화를 언어적 사고체계의 간섭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것이며, 의미의 전달이라는 폭력에서 벗어나 더 넓은 차원의 의미를 표현할 영화의 가능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찌
보면 ‘코미디 영화 위주로 흘러가는 한국영화에 다양한 영화의 흐름이 필요하다’는 식의 논의처럼 비치기도 하겠지만, 이들이 주장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다양성의 확보는 절대 아닙니다.

이들의 논의는 예술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벗어나 예술이라는 말이 담보하는 열린 사유와 그로 인해 가능해질 반자본주의적 태도들을 다시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이미지로서의 영화의 가능성을 추동해 내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주류 영화의 관습적 표현과 소통에 대한 오해 뿐 아니라 기왕의 영화에 대한 해체를 통해 고정된 양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고, 다시 말해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태도들은 물론 포괄적인 보수진영과 전면전을 치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야말로 ‘자본으로부터, 사회, 정치제도로부터 그리고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이라는 독립영화에 내려진 우회적 정의를 피하고 ‘독립영화적인 정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훨씬 더 핵심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빠른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이쯤
이야기하면 이들의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대충은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잘모르겠다는 이가 계실지도 모르겠는데, 너무 그러실 것 없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나도 대충은 이해할 것 같지만 어떤 부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를 들어 이미지 중심의 영화를 사고해야한다는 이야기에 붙어 나오는 ‘사천 년 언어 역사의 끝에 등장한 영화는 … 오랫동안 언어에 고착되었던 텍스트 중심적인 사고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킬 방법을 제시한다’라거나 ‘언어를 거치지 않고, 언어화될 수 없음을 불안해하지 않고, 현상을 날 것으로 인식하게 할 가능성, 총체적으로 사고하게 할 가능성’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언어로부터 해방이면 혹시 라깡의 상징계 이전의 상상계로 돌아가자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무의식도 언어로 구성되어있다는데 언어를 거치지 않고 인식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하는 등의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스스로 라깡이나 정신분석학에 대해 잘 모르면서 괜히 꼬투리 잡는 꼴이 될까봐 일단 접어둘까 합니다.


사실
내가 이들의 이야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은 ‘이들의 입장대로 영화미학을 세우는 것이 과연 반자본주의적 혹은 반부르주아적인 것일까’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입장을 살펴보면 이들이 영화를 구분하고 있으며, 이 중 특정한 한 부류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거부하는 것은 바로 ‘대중적’인 영화입니다. 이들은 대중영화가 제공하는 자명성과 투명성 그리고 안락성을 거부하며, 예술로서의 영화를 채택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들은 민중에게 제공되는 대중영화들이 알튀세가 말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처럼 작동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대중영화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은 그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영화언어의 방식이며,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이해가 가능하다는 폭압적인 믿음이라고 정리하는 듯 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계급들은 서로 다른 능력과 성향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한 영화를 파악하는 것, 이들의 표현대로 말하면 사유로서의 영화를 알아보는 지각 양식의 차이는 이러한 특정한 성향에 근거합니다.

이 지각양식의 차이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시선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차이는 각자가 처한 사회적 출신배경, 교육자본 등의 경제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런 차이에 의해 각 계급들의 문화적 취향과 문화적 실천은 다르게 구분됩니다. 그리고 이런 문화적 실천행위의 차이는 궁극적으로 기존의 계급구조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나는
자명성과 투명성에 대한 거부를 통해 대중적인 것을 정당하지 못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깔려 있는 이들의 입장이 다른 태도의 특권화로 귀결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설사 영화미학을 바라보는 이들이 반자본주의, 반부르주아를 주장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분류는 위계화로 이어지며, 앞서 지적했듯 사회적, 문화적 구별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계급의 차이를 효과적으로 재생산해내는 역할로 귀결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미학 논쟁은 이제 첫걸음을 떼었을 뿐입니다. 이들의 입장은 앞으로 구체적인 맥락 위에서 더욱 정교화될 것이며,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가 독립영화는 물론 한국 영화 논의의 전반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 첨부
한국독립영화협회가 발행하는 계간 『독립영화』에나 어울릴만한 글을 『무빙 이미지』에 뜬금 없이 싣는 것 같아 조금 죄송하기도 합니다. 이들의 입장에 대한 더 자세한 글들은 계간 『독립영화』13호, 14호, 16호와 독립영화제 [인디포럼 2002] 메인 카탈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작성 : 2003. 06.
게재 : <무빙 이미지> 200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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