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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02 일본침몰 : 2007.0201. 2
  2. 2007.02.01 독립영화의 새로운 모색 - 다시, 독립영화란 무엇인가?
  3. 2007.02.01 영화의 문화 다양성 확대를 위해 필요한 것은...

일본침몰 : 2007.0201.

TRACE 2007. 2. 2. 12:04
일본산 블록버스터 영화 <일본침몰>.

최근 2~3년 내에 두드러지는 일본영화의 변화 중 하나는 큰 예산의 이벤트 무비를 자주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큰 예산의 영화는 가끔씩 제작되는 애니메이션 영화였을 뿐, 실사(라이브액션)영화의 경우 큰 예산의 작품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민영 텔레비전 방송사와 복합 미디어 기업으로 변화를 꾀하는 출판사들이 영화산업에 진출하면서 기존 메이저 스튜디오의 제작이 아닌 다른 방식의 큰 예산 영화 제작이 일련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듯 하다.

<일본침몰>은 바로 이런 거대 예산 이벤트 무비 제작 흐름의 2006년 결과물이다. 일본이 침몰한다는 가상의 미래 역사를 다루는 만큼 영화 제작에는 많은 특수효과가 등장할 수밖에 없고, 컴퓨터 그래픽 등 특수효과를 전면에 채용하기 위해서 예산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 이런 큰 예산의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제작비 마련이 가능할 정도의 일정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야만 한다.

물론 거대예산의 블록버스터 영화 / 이벤트 영화가 시장을 부양시키는 효과도 있을 수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은 영화 제작 자본의 시장 규모 확대에 대한 욕망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거대 예산영화에 대한 일정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지속될 수 있다는 혹은 지속할 수 있고 더 커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을 때에 가능한 일이다. <일본침몰>을 비롯, 몇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제작 상영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일련의 욕망과 기대감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망과 기대감만으로 거대 예산이 회수되지는 않는 법. 거대 예산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상영 스크린의 확보와 상영 기간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 스크린과 기간의 확보를 위해 영화 산업 자본이 선택하는 (세상 어느 영화 자본과 마찬가지로) 독과점적 질서 안에서의 독점적 영업 행위로 드러난다.

일본에서는 시네콘이라 부르는 멀티플렉스의 확대와 복합 미디어 자본의 시장 결합이 최근 영화산업의 주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일본 최대 메이저 스튜디오인 토호(東寶, TOHO Co., Ltd)와 TBS 도쿄방송의 결합이 대표적인데, <일본침몰>을 비롯,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NANA> 등의 작품 역시 토호와 TBS가 함께 한 작품이다.

이런 결합은 메이저 영화사와 방송사의 일대일결합이라기 보다는 제작위원회 구성이라는 방식으로 구체화되는데, 방송사는 예능프로그램 등을 활용한 프로모션을, 영화사는 배급과 선전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많은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극장업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배급에서 상영까지 일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토호와 TBS의 결합의 경우 토호가 시네마콤플렉스 체인인 TOHO CINEMAS(32개 사이트, 307개 스크린)를 자회사로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TOHO CINEMAS 외에도 16개 사이트, 127개 스크린의 멀티플렉스를 경영하고 있고, 시네마 콤플렉스 이외의 영화관도 운영하고 있는 일본 최대의 상영업자이기 때문에 상영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하나의 작품을 공개함에 있어 메이져 스튜디오의 수직계열화와 거대미디어회사의 수평적 결합을 이뤄냄으로써 시장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가게 되는 셈인데, 일본의 거대 예산 블록버스터는 대부분 이런 결합을 바탕으로 상영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형태로 추진된다고 한다.
 
이런 양태는 일본산 블록버스터 제작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되기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일본 상영 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현재 일본의 상영 시장 역시 스크린독과점이라고 부를만한 현상들이 나타나며, 다양한 영화의 상영기회가 축소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정작 영화이야기는 안하고, <일본침몰>이 제작될 수 있는 일본영화 산업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만 하게 된 셈인데, 사실 영화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비슷한 소재라고 할만한 미국산 블록버스터 영화들 <딥임팩트>, <아마겟돈>, <투모로우>와 비교해 보자면, 피해를 당하는 시민들의 모습, 그리고 피해를 줄이려는 정부기관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 것이 눈에 띠지만, 그런 특성을 제외하면 느슨한 플롯의 연결, 황당한 설정과 전형적인 스토리 전개가 거슬리는 작품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에 대한 일본 내보다는 해외 영화 세일즈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영화의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일본침몰>이라는 제목 하나로 필름 마켓에서 엄청난 관심을 이끌어 내었다는 후문. 아마 세계 각국에게는 일본열도가 침몰한다는 그 컨셉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나 보다. 아마 이 영화가 한국에서 일정하게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일본이 침몰한다는 영화의 기본적 설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부연하자면, <일본침몰>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와 달리 영화의 주인공의 죽음이 등장하는데, 이런 주인공의 죽음이라는 경향은 한국산 블록버스터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아직 일본산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많이 보지 못했지만, 다른 일본산 블록버스터에서도 이런 경향이 존재한다면 로맨스를 결합하고 (가설에 불과하지만) 주인공의 장렬한 최후로 마무리하는 스토리라인이 미국과는 다른 아시아 블록버스터 영화의 관객 소구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를 확인하려면 다른 일본산 블록버스터영화들을 볼 필요가 있겠다.


일본침몰 (日本沈沒, Sinking of Japan)

제작년도 : 2006 / 상영시간 : 133분
감독 : 하구치 신지 / 출연 : 토요카와 에츠시, 쿠사나기 츠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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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의 새로운 모색 - 다시, 독립영화란 무엇인가?

독립영화 2007. 2. 1. 20:20

1. 들어가며

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독립영화는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다. 매년 만들어지는 독립영화의 수는 거의 6백편에 육박하며, 독립영화제나 단편영화제를 지향하는 영화제도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국내에서 개최되는 웬만한 영화제들마다 독립영화나 단편영화를 위한 섹션이 따로 마련되는 등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는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독립영화에 대한 대접이 나아진 것은 비단 국내의 일만은 아니다. 세계최고의 영화제라는 깐느국제영화제를 비롯한 해외의 각종국제영화제들에서 한국의 독립영화를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편영화제로는 최고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끌레르몽-페랑국제단편영화제에서 올해 한국영화회고전을 가진 것을 비롯해 영화제들마다 경쟁작 혹은 초청작으로 한국의 독립영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영화의 이런 질적, 양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를 둘러싼 외부적인 조건들은 여전히 열악하다. 그리고 독립영화는 여전히 미지의 영화이다. 한국독립영화협회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 등에는 “독립영화가 뭔가요?“ 등의 질문이 계속 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서는 아직도 독립영화가 뭔지를 소개해 달라고 한다.

독립영화가 질적, 양적인 발전을 거듭하더라도 이런 독립영화에 대한 의문은 절대 명쾌하게 답해지지 않을 것이다. 답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독립영화가 베일에 둘러쌓인 미지의 영화로 남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독립영화가 지닌 독특한 성격 때문이다. ‘영화’라는 지도안에서 독립영화가 차지하는 지점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립영화에 대한 질문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2. 독립영화란 무엇인가?

사실 독립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인터넷에서 ‘독립영화‘를 검색해보면 독립영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 EnCyber(
www.encyber.com)는 독립영화에 대해 “기존 상업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제작한 영화“라고 요약하며 본문에서 “일명 '인디영화'라고도 한다. 이윤 확보를 1차 목표로 하는 일반 상업영화와는 달리 창작자의 의도가 우선 시 되는 영화로, 주제와 형식, 제작방식 면에서 차별화된다. 따라서 여기서의 '독립'이란 자본과 배급망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독립영화는 시대에 따라 성격을 달리하여, 1980년대 초반에는 외국의 실험영화나 단편영화들을 모델로 삼았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체제저항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었다. 현재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다양해지고 조금씩 상업성을 띤 영화도 등장하고 있다“라고 한국의 독립영화에 대해 따로 부연하고 있다.

독립영화에 대한 정의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란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은 그 정의들이 왠지 완전해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독립이라는 개념은 ‘무엇으로부터‘ 혹은 ‘무엇을 위한‘이라는 전제조건이 무엇인지에 따라 다른 위치를 점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독립영화를 한 군데 고정시키려고 하는 노력은 독립영화가 지닌 독립적인 성격 덕분에 언제나 무화되기 마련인 것이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의 한국 독립영화에 대한 설명은 특성과 현 상황을 나름대로 포착하고 있지만 독립영화의 상황을 이해하기엔 역부족인게 사실이다. 역사 속의 독립영화, 혹은 독립영화의 역사를 통해 독립영화가 어떤 길을 밟아왔으며, 그 안에서 독립영화는 무엇이었는지를 되새기는 방법을 통해 독립영화가 무엇이었는지 점검해 보는 것은 현 시기의 독립영화는 어떻게 규정되어 있으며, 어떻게 재정립되어야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3. 역사 속의 독립영화, 독립영화의 역사

1) 독립영화의 전사(前史)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를 다룬 <변방에서 중심으로>를 연출한 서울영상집단의 홍형숙은 1998년에 발표한 「독립영화, 15년의 몽따쥬」라는 글에서 독립영화의 전사로 70년대 중후반의 속칭 ‘문화원세대‘를 들고 있다. “물론 이들의 활동이 80년대  영화 운동과 맥락과 직결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이 시기에 활동했던 구성원들이 이후 80년대 초반의 영화운동을 주도한 세대였다는 사실“에 미루어 이 시기를 독립영화의 전사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70년대의 독립영화 전사는 비단 문화원세대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카이두 클럽‘을 비롯한 일련의 씨네클럽을 통해 당시 주류영화와는 다른 실험영화들이 존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이후 80년대의 영화에 적극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그러나 새로운 영화를 갈망했다는 점에서 이 실험영화군들과 ‘문화원세대‘는 한국 독립영화의 밑거름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2) 운동으로서 영화의 등장

10.26으로 유신이 끝나고 시작된 80년 서울의 봄과 광주민주화항쟁의 기억은 80년대 이후 ‘운동으로서의 영화‘를 등장하게 한다. 당시 학생운동의 주도 세력들은 민중을 변혁 운동의 주체로 설정하고 노동 현장으로의 존재 이전을 서서히 준비하고 있었으며, 이런 상황 내에서 당시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대학영화패들은 전면적이지는 않지만 영화를 운동의 방법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서울대 영화패 ‘얄라셩‘의 활동으로 시작한 ‘서울영화집단‘은 8mm 영화제작과 대학가 상영 등의 방법으로 ‘영화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이들은 『새로운 영화를 위하여』와 『영화운동론』등의 책을 발표하며 제3세계의 영화운동을 적극적으로 소개해 나갔다. 그리고 각 대학 영화패 결성을 도우며 영화운동의 폭을 넓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3) 작은 영화를 지키고 싶습니다

84년 7월 국립극장 실험무대에서는 ‘작은 영화를 지키고 싶습니다‘란 제목으로 ‘제1회 작은 영화제‘가 개최되었다. 이 영화제는 서울영상집단으로 대표되는 영화를 운동으로 사고한 사람들과 개인적인 영화활동을 해왔던 젊은 영화인들이 함께 모인 자리였다. 이들은 영화제를 통해 영화의 사회적 기능과 영화소집단 운동에 대해 고민했으며, 상업적이고 체제순응적인 주류영화에 대항에 스스로를 ‘작은 영화‘라고 불렀다. '작은 영화'는 광의의 개념으로는 현실을 비판적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미래 지향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열린 영화를 의미하며, 협의의 개념으로는 큰 영화와 구별되는 16mm, 8mm 영화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 ‘작은영화‘는 현실과 유리된 단편영화를 지양하고 영화 현실을 개혁하겠다는 생각을 공표한 첫 번째 영화운동의 성과였으며, 이후 80년대 후반 영화운동을 추동한 원동력이 되었다.

4) 적극적인 현실개입과 영화 탄압의 시작

‘작은 영화‘의 선포이후 적극적으로 시작된 대학영화패의 설립과 민민투, 자민투, 건대항쟁으로 이어지는 대학 운동은 영화의 현실 개입을 가져왔다. 당시 대학 총학생회는 영상을 선전의 한 방법으로 사고하기 시작했으며, 집회에서 편집된 영상물의 상영을 시작했다. 대학에서의 영화가 학생운동의 한 방법으로 사고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처음으로 국가에 의한 영화의 탄압이 시작되었다. 86년 당시 대학가에서 상영되었던 <부활하는 산하>에 계급 투쟁사의 몇 구절이 인용된 점을 빌미로 검거령이 내려졌는데, 그 배후로 ‘서울영상집단‘이 지목되었고 농민운동을 다룬 <파랑새>도 불순한 작품으로 규정된 것이다. 조사 결과 <파랑새>가 국가보안법 위반 사항이 뚜렷하지 않자, 검찰은 영화법 32조 5항 및 12조 1항 - 상영 전에 공륜의 사전 심의 없이 영화를 불법으로 상영할 시 징역 2년 이하 또는 5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한다 -을 적용하여 대표 홍기선과 총무 이효인을 구속하게 된다.

5) 현실 운동으로서의 영화운동 - 87년 이후의 독립영화

학생운동으로서의 영화운동은 87년 6월 항쟁 이후 더욱 적극적으로 현실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민족영화‘라는 새로운 개념이 영화운동의 하나의 입장으로 등장하여 사회변혁운동으로서의 영화운동의 고민을 발전시켰으며, 89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 이후 '노동해방'이라는 이념이 운동의 전략적 목표로 등장하기 시작하자 ‘서울영상집단‘ 등이 주축이된 ‘노동자뉴스제작단‘이 만들어지며 영화운동과 대중운동의 절합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전개되었던 ‘장산곶매‘와 ‘영화제작소 청년‘의 장편독립영화제작은 80년대 쌓아왔던 현실운동으로서의 영화운동의 정점을 이루게 된다. 89년 <오! 꿈의 나라>에서 시작되어 90년 <파업전야>, 91년 <어머니, 당신의 아들>에 까지 이어진 독립장편영화의 제작 과정과 상영투쟁은 한국의 독립영화의 가능성을 제시한 가장 매혹적인 순간으로 기억되었으며, 독립영화가 넘어야할 ‘신화‘가 되었다.

6) 90년대 이후 독립영화

그러나 90년대 이후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92년 문민정부의 출범 등으로 나타난 운동세력의 퇴조는 영화운동에도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독립장편영화의 제작 움직임은 급격하게 퇴조하였으며, 독립영화의 제작은 ‘푸른영상‘, ‘노동자뉴스제작단‘, ‘서울영상집단‘ 등 비디오다큐멘터리의 활발한 제작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90년대 사회주의 몰락이후 급격히 등장하게 된 포스트모던 열풍은 사람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문화로 이행하게 했으며, 영화 역시 이 시기의 중요한 문화적 화두가 되었다. 기존 독립영화 진영 내에서도 과거의 영화운동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모색이 전개되었으며, 이런 새로운 모색은 영화운동에서 ‘운동‘을 강조하기보다는 ‘영화‘를 강조하는 ‘영화제작소 청년‘의 지향으로 대표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영화‘에 대한 접근은 영화지망 인력을 양산하게 되고, 단편영화의 급격한 양적 발전으로 이어졌다.

기존 독립영화단체의 새로운 모색과 새로운 인력의 등장으로 인한 단편영화의 발전은 충무로로 대표되는 주류영화의 대안을 요구하는 영화분위기 속에서 대안영화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 쟁취‘라는 테제 속에서 독립다큐멘터리 진영과 보조를 맞추게 되고, 이 단편영화군과 독립다큐멘터리 진영은 한국독립영화의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4. 다시 독립영화란 무엇인가?

지배문화 대 피지배문화, 자본가문화 대 노동자문화, 고급문화 대 대중문화라는 선명한 이분법이 상존했던 90년대 초반까지의 독립영화의 정의는 선명했다. 특히 87년 민주화항쟁에서 92년 대선까지 독립영화의 전선은 너무나 명확했다. 오히려 이런 명확했던 독립영화의 성격이 현재의 독립영화를 재정립하는데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것은 그 시기의 독립영화가 가지고 있었던 영화의 제작과정과 상영투쟁이라는 뚜렷한 기억이 너무나 매혹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차이와 모순이 혼종된 90년대 이후의 상황은 하나의 단일하고 총체적 실체로의 수렴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예전의 잣대로 독립영화를 규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또한 정치의 빈자리를 채운 문화가 만들어낸 ‘언더그라운드‘, ‘서브컬처‘, ‘마이너리티‘, ‘얼터너티브‘ 등의 다양한 개념으로의 분화는 ‘독립‘이라는 문화적 아이콘을 더 이상 한가지로 사고할 수 없게 만들었다. 분화와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소비문화의 전면화, 엷어진 정치적 검열의 상황 등은 더 이상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나 ‘정치적 검열로부터의 독립‘이라는 테제로 독립영화를 말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더 다양해지고 더 폭넓어졌다‘라는 독립영화에 대한 평가나 ‘독립영화 개념이 혼란해지고 있다’는 독립영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독립영화를 재정립하려는 의도들에서 비롯된 입장들이다. 전자의 경우는 다원화된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론적 입장이며, 후자의 경우는 90년대 초의 독립영화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들이 가지는 사고의 혼란이다.

이제 독립영화는 새로운 지향을 모색해야할 시점이다. 더 이상 과거의 기억에 함몰되어 있거나, 문화의 다양성에 근거해 전선을 놓쳐서는 안된다. 사회는 여전히 모순들로 가득 차 있고, 오히려 이런 모순들은 중층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독립영화의 대안적인 역할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철저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법과 자본‘이라는 거대담론이 아닌 ‘성, 젠더, 계급, 지역‘ 등 현재 문화를 가로지르는 정체성의 화두 속에서 독립영화는 스스로의 입장을 재정립해야할 것이다.

법과 자본의 문제만으로 외삽되지 않는 영화와 영화로만 환원되지 않는 영화의 사고 속에서 독립영화의 진지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다양하게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현존하지만 부재한 이런 공간들의 위치를 점령할 때 독립영화의 새로운 방향은 모색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작성 : 2001. 5.
'독립영화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쥐고 있던 시절에 쓴 글.
독립영화사도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어, 한국의 독립영화를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나.

2001.6. 동국대 교지 [동국] 게재
:

영화의 문화 다양성 확대를 위해 필요한 것은...

영화정책 2007. 2. 1. 20:12

최근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스크린쿼터제의 축소 조정을 전제로 마이너리티쿼터 신설 등의 정책 방향을 언론에 흘리면서 스크린쿼터제와 영화문화 다양성의 관계 등에 대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논란 속의 영화문화의 다양성은 실질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고 스크린쿼터제를 축소하려는 입장과 스크린쿼터제의 무용성의 근거로 전유되고 있을 뿐이다. 실제 주장을 살펴보면 그저 다양성이 훼손되고 있고 보장되어야 한다는 립서비스일 뿐이거나, 실체도 불분명한 마이너리티쿼터제가 필요하다는 식의 제기에 멈춰버릴 뿐, 실질적인 다양성 확보 방안에 대한 진지한 접근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단언컨대 영화문화 다양성은 스크린쿼터제의 축소나 마이너리티쿼터제의 신설로 확대될 수 없다. 영화문화 다양성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몇 가지 정책에 대한 근시안적인 접근보다는 보다 근본적이고, 확대된 시선과 접근이 필요하다. 영화의 문화 다양성, 스크린쿼터제 등은 이러한 전제 속에서 다시 사고되어야 하며, 그 좌표가 다시 설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 속에서 보다 다양한 정책들이 실행될 수 있을 때, 제대로 된 문화 다양성의 확대가 가능할 것이다.

정부나 정당이 실질적인 문화 다양성 정책을 고민한다면, 현재 산업 진흥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영화 진흥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장과 자본의 논리에 근거해서는 비시장적이고 반상업적인 영화 문화의 자리를 구체적으로 확보할 수 없다. 산업과 시장이 확대에 맞춰 문화 민주주의에 기반한 문화적 공공 영역을 확대할 때에야 비로소 문화 다양성의 자리는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독립영화 진영은 그간 정부의 영상정책이 문화 공공성에 기반한 정책으로 재편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해 왔다. 독립영화 전용관의 설립, 영상미디어센터 및 시네마테크의 전국적인 설립 확대 등 공공적인 영상문화정책이 구체적으로 수립되고 강력하게 추진될 때, 산업과 시장의 조건 안에서는 보장되기 어려운 영화 문화의 다양성을 획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독립영화 전용관이나 영상미디어센터 등 독립영화 지원 정책의 확대만으로 영화문화의 다양성이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보장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문화 공공성의 원칙이 정부기구만이 인식해야할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한국 영화 산업 역시 문화 공공성의 원칙을 깊이 재고할 필요가 있다. 산업에 의해 생산된 영화가 사회적, 문화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닐 것인가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접근이 있을 때, 이윤 창출을 목표로 한 어처구니없는 영화들의 생산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며, 보호받아야 하고 진흥되어야할 문화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스크린쿼터제의 유지 주장 역시 지금까지의 유지근거라고 할 수 있을 한국영화 산업 보호와 진흥의 원칙만이 아니라 문화 공공성의 원칙 속에서 재위치 지우고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에야 영화 산업만을 위한 스크린쿼터제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문화 다양성의 획득은 말만으로는 성취될 수 없는 어려운 과제이다. 정부와 영화계는 스크린쿼터의 축소 여부에 대한 지엽적인 싸움을 위해 문화 다양성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전면적이고 구체적인 문화 다양성 정책들과 과제들을 생산하고 추진해 가야할 것이다. 그 안에서 독립영화 전용관을 비롯한 독립영화 진흥 정책을 더욱 활발히 펼쳐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작성 : 2004.09.21.
지금은 없어진 [COREA]라는 잡지에서 원고 청탁을 받고 쓴 글. 늘 하는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아마 마감에 맞추지 못해 싣지는 못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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