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침몰 : 2007.0201.

TRACE 2007. 2. 2. 12:04
일본산 블록버스터 영화 <일본침몰>.

최근 2~3년 내에 두드러지는 일본영화의 변화 중 하나는 큰 예산의 이벤트 무비를 자주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큰 예산의 영화는 가끔씩 제작되는 애니메이션 영화였을 뿐, 실사(라이브액션)영화의 경우 큰 예산의 작품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민영 텔레비전 방송사와 복합 미디어 기업으로 변화를 꾀하는 출판사들이 영화산업에 진출하면서 기존 메이저 스튜디오의 제작이 아닌 다른 방식의 큰 예산 영화 제작이 일련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듯 하다.

<일본침몰>은 바로 이런 거대 예산 이벤트 무비 제작 흐름의 2006년 결과물이다. 일본이 침몰한다는 가상의 미래 역사를 다루는 만큼 영화 제작에는 많은 특수효과가 등장할 수밖에 없고, 컴퓨터 그래픽 등 특수효과를 전면에 채용하기 위해서 예산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 이런 큰 예산의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제작비 마련이 가능할 정도의 일정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야만 한다.

물론 거대예산의 블록버스터 영화 / 이벤트 영화가 시장을 부양시키는 효과도 있을 수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은 영화 제작 자본의 시장 규모 확대에 대한 욕망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거대 예산영화에 대한 일정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지속될 수 있다는 혹은 지속할 수 있고 더 커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을 때에 가능한 일이다. <일본침몰>을 비롯, 몇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제작 상영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일련의 욕망과 기대감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망과 기대감만으로 거대 예산이 회수되지는 않는 법. 거대 예산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상영 스크린의 확보와 상영 기간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 스크린과 기간의 확보를 위해 영화 산업 자본이 선택하는 (세상 어느 영화 자본과 마찬가지로) 독과점적 질서 안에서의 독점적 영업 행위로 드러난다.

일본에서는 시네콘이라 부르는 멀티플렉스의 확대와 복합 미디어 자본의 시장 결합이 최근 영화산업의 주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일본 최대 메이저 스튜디오인 토호(東寶, TOHO Co., Ltd)와 TBS 도쿄방송의 결합이 대표적인데, <일본침몰>을 비롯,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NANA> 등의 작품 역시 토호와 TBS가 함께 한 작품이다.

이런 결합은 메이저 영화사와 방송사의 일대일결합이라기 보다는 제작위원회 구성이라는 방식으로 구체화되는데, 방송사는 예능프로그램 등을 활용한 프로모션을, 영화사는 배급과 선전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많은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극장업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배급에서 상영까지 일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토호와 TBS의 결합의 경우 토호가 시네마콤플렉스 체인인 TOHO CINEMAS(32개 사이트, 307개 스크린)를 자회사로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TOHO CINEMAS 외에도 16개 사이트, 127개 스크린의 멀티플렉스를 경영하고 있고, 시네마 콤플렉스 이외의 영화관도 운영하고 있는 일본 최대의 상영업자이기 때문에 상영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하나의 작품을 공개함에 있어 메이져 스튜디오의 수직계열화와 거대미디어회사의 수평적 결합을 이뤄냄으로써 시장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가게 되는 셈인데, 일본의 거대 예산 블록버스터는 대부분 이런 결합을 바탕으로 상영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형태로 추진된다고 한다.
 
이런 양태는 일본산 블록버스터 제작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되기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일본 상영 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현재 일본의 상영 시장 역시 스크린독과점이라고 부를만한 현상들이 나타나며, 다양한 영화의 상영기회가 축소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정작 영화이야기는 안하고, <일본침몰>이 제작될 수 있는 일본영화 산업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만 하게 된 셈인데, 사실 영화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비슷한 소재라고 할만한 미국산 블록버스터 영화들 <딥임팩트>, <아마겟돈>, <투모로우>와 비교해 보자면, 피해를 당하는 시민들의 모습, 그리고 피해를 줄이려는 정부기관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 것이 눈에 띠지만, 그런 특성을 제외하면 느슨한 플롯의 연결, 황당한 설정과 전형적인 스토리 전개가 거슬리는 작품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에 대한 일본 내보다는 해외 영화 세일즈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영화의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일본침몰>이라는 제목 하나로 필름 마켓에서 엄청난 관심을 이끌어 내었다는 후문. 아마 세계 각국에게는 일본열도가 침몰한다는 그 컨셉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나 보다. 아마 이 영화가 한국에서 일정하게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일본이 침몰한다는 영화의 기본적 설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부연하자면, <일본침몰>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와 달리 영화의 주인공의 죽음이 등장하는데, 이런 주인공의 죽음이라는 경향은 한국산 블록버스터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아직 일본산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많이 보지 못했지만, 다른 일본산 블록버스터에서도 이런 경향이 존재한다면 로맨스를 결합하고 (가설에 불과하지만) 주인공의 장렬한 최후로 마무리하는 스토리라인이 미국과는 다른 아시아 블록버스터 영화의 관객 소구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를 확인하려면 다른 일본산 블록버스터영화들을 볼 필요가 있겠다.


일본침몰 (日本沈沒, Sinking of Japan)

제작년도 : 2006 / 상영시간 : 133분
감독 : 하구치 신지 / 출연 : 토요카와 에츠시, 쿠사나기 츠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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