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한국 영화산업의 성장전략, 독(毒)이 되어 돌아오다

영화정책 2013. 11. 12. 11:35

한국 영화산업의 성장전략, 독(毒)이 되어 돌아오다


독과점 시장이 되어버린 한국 영화시장


2012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은 온통 장밋빛이었다. 전체 상영시장의 관객 수는 1억 9,489만 명으로 전년 대비 21.9%나 증가했고, 총 매출액도 1조 4,551억 원으로 17.7% 성장했다. 한국영화 사상 최고 기록이다. 한국 영화산업도 활황이었다. 한 해에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최초로 2편(<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을 넘었을 뿐 아니라, 400만 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늑대소년> 등 10편, 2백만 명 이상의 영화가 <부러진 화살> 등 17편, 150만 명 이상은 <공모자들> 등 23편, 100만 명 이상 영화가 <은교> 등 32편으로 고른 흥행을 보였다. 이에 따라 한국 영화 관객 수도 1억 1,461만 명을 넘어 역대 최다였다. 한국영화의 상영시장 점유율은 58.8%이었고, 이는 2006년 이래 최고였다. 한국영화 투자·제작 부문의 수익성도 흑자로 전환되었으며, 수익률이 13%에 달해 2003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주류에 한정된 이야기들이다. 장밋빛 이면에는 항상 어두운 그늘이 존재한다. 


고른 흥행을 기록했다고는 하지만, 흥행한 영화들의 배급사는 다양하지 않았다. 2012년 한국영화의 상영시장 매출 점유율 순위는 씨제이이앤엠 주식회사(이하 CJ)가 36.7%로 1위,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이하 쇼박스)가 21.7%로 2위,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가 16.5%로 3위,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이하 롯데 Ent.)가 15.7%로 4위였다. 1위부터 4위 사업자의 관객 점유율을 합하면 90.6%였다. 여기에 CJ의 저예산영화 레이블인 매출점유율 5위 필라멘트픽쳐스를 더하면 상위 4개의 사업자가 전체 시장의 92.9%를 점유했다. 4개 사업자의 과점이다.


한국영화와 해외영화를 포함한 전체 상영시장의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다. 앞서 언급한 4개 회사에 할리우드 직접배급사(이하 직배사)인 소니픽쳐스릴리징월트디즈니스튜디오코리아(주)와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유니버셜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유),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등 4개가 순위에 포함되는데, 한국 4개사와 직배사 4개가 차지하는 매출 점유율은 93%다. 정리하면 한국영화 상영시장은 한국 4개 기업이 과점하고 있고, 한국의 전체 상영시장은 한국 사업자와 직배사가 양분하고 있는 셈이다. 


2천 년대 이후 한국 영화산업 성장 전략 : 상영유통 장악과 수직 계열화


한국 영화시장이 한국 메이저와 직배사로 양분된 것은 직배사가 한국 메이저보다 먼저 시장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직배는 1989년 이래 본격화되었고, 한국영화의 메이저라고 부를만한 대기업의 영화업 참여는 90년대 이후였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메이저는 대부분 2천 년대 이후 구축되었다.


직배사는 거대 예산의 블록버스터라는 한국영화제작산업이 경쟁하기 힘든 콘텐츠로 영화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가졌다. 90년대 영화 시장에 뛰어든 삼성, 대우 등 대기업은 직배사와 마찬가지로 콘텐츠로 승부했다. 당시의 대기업은 미국 준 메이저의 영화를 수입하여 배급하기도 했고, 한국산 블록버스터를 제작하여 배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직배사와의 경쟁에서 이기진 못했다. 하지만 2천 년대 시장에 진입한 CJ, 동양 등의 대기업은 달랐다. 2천 년대 이후 메이저로 등장한 대기업은 상영업을 먼저 시작했다. 제작업이 아닌 상영업을 할 경우 직배사와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대신 흥행성이 높은 직배사의 영화를 상영하면 대기업도 수익을 올린다. 직배사는 영화제작업자에게 경쟁 상대이지만, 상영업자에게는 ‘윈-윈 전략’의 파트너다. 2천 년대 메이저로 성장한 대기업의 전략은 직배사와의 경쟁이 아니라 직배영화를 캐시 카우로 만드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이 전략은 적중했다.


상영업을 시작으로 영화산업에 뛰어든 대기업에게는 다음 과제가 있었다. 직배 영화가 꾸준히 수익을 내긴 하지만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동력이 되지 못할 것은 자명했다. 기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유통뿐 아니라 상품도 장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한 유통업자가 아니라 콘텐츠 생산자가 되어야했고, 기업의 주도 하에 이를 추진하려면 직접 콘텐츠의 제작에 뛰어들어야 했다. 상영업을 하고 있는 것은 콘텐츠 생산에 뛰어들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었다. 대기업은 상영업을 기반으로 배급업을 병행하고, 배급 콘텐츠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투자도 진행했다. 바로 이것이 상영-배급-투자로 이어지는 한국 메이저의 수직 계열화 전략이었다. 실제 2천 년대 이후 메이저로 불릴만한 영화기업들은 대부분 상영업을 함께 했다. CJ는 CGV를 기반으로 했고, 동양의 쇼박스는 메가박스를 가지고 있었다. 배급사로 시작한 시네마 서비스는 수직 계열화를 위해 프리머스 시네마를 설립했다. 현재 시네마 서비스는 사실상 배급사로서의 역할을 마감했고 프리머스 시네마는 CJ 계열로 편입되었으며, 쇼박스는 메가박스를 매각했다. 하지만 최근 등장한 롯데 Ent.가 롯데시네마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한국 메이저의 수직 계열화 경쟁 우위 전략은 여전하다.


한국 메이저의 수직 계열화 전략은 영화 사업의 안정적 성장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기반이 되었고, 한국 영화산업 전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직배사와의 경쟁에서 뒤지던 한국 영화산업은 이 시기를 지나며 직배사와 동반 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직 계열화 전략과 이를 통해 형성된 시장의 독과점 질서는 한국 영화산업이 현재 맞닥뜨린 문제들의 원인이 되었다.


한국 영화산업 성장 전략이 낳은 폐해


우선 대기업의 상영업 참여는 한국 상영업계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1995년 CJ의 CGV 강변이 등장한 이래 한국의 상영업계는 멀티플렉스로 완전히 재편되었다. 2012년 전국 영화관 314개 중 263개가 멀티플렉스이며, 이 중 250개가 체인화된 멀티플렉스였다. 대기업의 멀티플렉스만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대기업이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늘여나감과 동시에, 기존의 상영업자들 역시 멀티플렉스로 전환했다. 하지만 상영업계의 변화는 단지 멀티플렉스화만은 아니었다. 대기업의 힘은 중소 상영업자의 힘을 압도했다. 상영업만 한 것이 아니라 배급업도 겸했기 때문이었다. 기존 상영업자들은 공동 브랜드 형태로 협력하는 등 대응방안을 모색하기도 했지만, 많은 사업자들은 경쟁에서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거나, 거대 체인 사업자의 하나가 되어야 했다. 대기업의 거대 유통기업에 의해 중소업체가 폐업하거나 일부가 되어버리는 일은 상영업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12년 기준으로 대기업 멀티플렉스 중 직영 영화관은 56%이며, 나머지 44%는 위탁 영화관이다. 전통적인 독립적 상영업자들도 멀티플렉스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 상영시장은 소수의 기업이 완전히 장악하는 시장으로 변했다. 2012년 CGV 계열 체인과 롯데시네마 체인은 전체 영화관의 62.5%, 전체 스크린의 69.9%를 차지했다. 여기에 메가박스 체인을 더하면 전체 상영관의 79.6%, 전체 스크린의 88.9%가 3개 사업자의 차지다. 독과점이다.


이뿐이 아니다. 상영시장에서 힘을 가진 메이저는 수직 계열화를 기반으로 배급 시장에서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다. 특정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주거나 좌석수가 큰 스크린을 배치하고, 다른 영화는 스크린을 적게 내주거나 좌석수가 적은 스크린을 배치하는 등의 방법으로 영화의 흥행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흥행성이 낮은 군소 배급사 영화의 경우 1개 스크린에 2편 이상의 영화를 상영하는 교차 상영을 강요하고 상영 시간대 역시 영화 마다 차별하는, ‘상영 유연화’라고 불릴 만한 정책을 통해 시장 진입 장벽을 높였다. 그 결과 상영시장은 불공정한 시장이 되고 말았다. 논란이 되고 있는 스크린 독과점과 교차 상영은 이런 상영 유연화 정책의 대표적 사례다. 


상영시장 독과점과 수직 계열화로 인한 폐해가 상영시장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국 영화산업의 경우 1차 유통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오프라인 상영시장의 수익이 전체 수익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 시장이 독과점화 되어, 수직 계열화한 메이저가 영화 시장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투자, 제작과 부가 시장 유통까지 메이저가 좌우할 수 있게 되었다. 중소 제작자들은 시장에서의 성공을 위해 수직 계열화된 메이저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고, 메이저와 제작사 간의 힘의 불균형에 의해 투자 및 제작에 까지 불공정한 계약이 재현되고 있다. 메이저는 상영업을 통해 흥행 수익의 절반을 우선 가져가고, 배급사로서도 과도한 배급수수료를 가져간다. 이 뿐 아니다. 투자 시 제작사와 투자사의 지분을 나눌 때 투자사의 몫을 높일 것을 요구했고, 최근에는 공동 제작을 요구하여 작품의 저작권 및 제작 지분의 일부도 챙기고 있다. 이에 따라 제작사들은 수익 지분을 잃게 되었고, 차기작의 기획개발이 어려워졌다. 투자의 경우에도 메인 투자자인 메이저가 이런 저런 방식으로 우선 위험을 회피하자 부분투자자들의 수익 지분이 낮아졌고, 이에 따라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부분 투자자들의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수익이라는 성과를 메이저가 독식함에 따라 스태프, 후반작업사 등은 성과의 혜택을 공정하게 누리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2006년 적자 수익률을 기록한 이래 스태프 인건비 및 후반작업 비용이 삭감되었지만, 수익이 흑자로 전환되어도 인건비가 작업비가 늘어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2천 년대 대기업의 수직 계열화 전략은 메이저를 생성시키고, 관객을 확대하는 등 한국 영화의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2천 년대 이래 성장한 한국 영화산업의 지표가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은 매우 크다. 과점 체제를 형성한 한국 영화기업과 직배사들만의 동반성장이 아니라 군소 업자들, 독립영화 제작자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성장의 열매가 구성원이 골고루 나누어져야 한다. 그럴 때 영화산업은 물론 영화문화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플랫폼] 2013년 9,10월호 (통권 41호)  (201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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