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상영 등급분류 제도가 개선이 되어야 하는 이유

영화정책 2013. 8. 7. 10:02

우리나라 헌법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예술가의 권리 또한 법률로 보호한다. 이를 위해 헌법은 ‘행정권이 주체가 되어 사상이나 의견 등이 발표되기 전에 내용을 심사 또는 선별하여 허가 받지 아니한 것의 발표를 금지’하는 사전검열을 절대적으로 금한다. 사전검열은 법률로도 할 수 없다.


영화도 헌법에 의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고 영화 창작자의 권리 또한 보호받으며, 영화에 대한 사전검열 역시 금지된다. 영화를 통한 의사 표현을 금지했던 과거 영화법 및 영화진흥법 등의 관련 조항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판결을 받았고, 영화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려는 노력에 의해 사전검열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완벽하게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이 규정하고 있는 상영 등급분류 제도라는 형태로 사전검열은 여전히 남아있다. 


현행 영비법은 ‘영화 및 비디오물과 그 광고∙선전물의 윤리성 및 공공성을 확보하고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상영 등급분류 제도를 두고 있다. 상영 등급분류 제도의 존재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고, 헌법재판소 또한 영화 매체의 특수성에 따라 사전 심사의 필요성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고 영화의 사전검열이 법적으로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등급 부여를 위한 사전 심사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지, 상영 허가나 금지를 위한 사전검열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허가를 받기 위한 표현물의 제출 의무, 행정권이 주체가 된 사전심의절차, 허가를 받지 아니한 의사표현의 금지 및 심사절차를 관철할 수 있는 강제수단 등의 요건을 갖춘 경우를 검열이라고 판단한다. 상영 등급분류를 규정한 영비법 제29조는 허가를 받기 위한 표현물의 제출 의무와 행정권이 주체가 된 사전심의절차∙허가를 받지 아니한 의사표현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으며, 제42조와 제45조 및 제94조는 이 절차를 관철할 수 있는 강제 수단을 규정하고 있다. 현행 제도는 사전검열인 셈이다. 현행 상영 등급분류가 적법해지려면 검열적 요소들이 제거되어야 한다.


우선 상영 등급분류 신청을 한 영화가 상영되지 못하는 문제의 개선이 필요하다. 상영 등급보류의 위헌 판결로 도입된 제한상영가 등급은 실제적 효력이 없으며 법적 실익도 없다. 청소년 보호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상영을 금지하는 방식으로 성인의 기본권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도 안 된다. 청소년 보호는 청소년 관람 통제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해결 가능하다. 상영 등급분류 신청을 한 영화가 상영되지 못하도록 하는 제한상영가 등급은 폐지되어야 한다. 아울러 등급분류는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사법제도가 아님을 간과해선 안 된다. 등급분류는 영화 상영을 위한 등급을 정하는 것일 뿐 다른 법률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가리거나 위반이 없음을 확증하는 절차는 아니다. 영화가 다른 법률에 위반될 때에는 그 법률의 규제를 받게 된다. 법에 저촉되는지에 대한 최종판단은 법원이 하는 것이다. 등급분류 기관은 이를 이유로 등급분류를 거부할 수 없고, 적절한 등급을 부여해야 한다.


이와 함께 상영 등급분류 제도로 상영 허가와 금지를 결정하는 법 조항도 개정되어야 한다. 영비법 제29조 제1항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영화업자에게 상영 등급분류의 의무를 부과하지만 제3항에서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영화의 상영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제3항에 의해 등급분류의 의무가 없는 영화도 상영을 하려면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 상영 등급분류 제도는 영리를 목적으로 유통되는 영화에 대한 규제일 뿐이다. 이를 넘어 영화라는 표현 행위를 허가하고 금지하는 제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 과잉금지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행 상영 등급분류 제도는 이 원칙에 위배된다. 등급분류 제도는 기본권의 제한을 최소화하면서 정책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청소년 보호 등 등급분류의 목적과 영화 표현의 자유 보장이 무조건 배치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두 목적을 균형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머리를 맞댈 때다.


독립영화 인터뷰 전문 매거진 'NOW' Vol.0 (201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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