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 ‘영비법’개정 논의, 방향과 전망 - 영화산업 환경과 실태 반영한 진취적 개정 요구 드세다

영화정책 2013. 11. 18. 17:51

법률로 영화예술의 질적 향상과 영화산업을 진흥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영화진흥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영상문화 및 영상산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진흥하겠다는 의지는 1995년 영상진흥기본법을 통해 제출된 바 있지만 진흥의 방식, 주체, 예산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영화진흥법 제정 이후 본격적인 영화진흥정책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영화진흥법은 2006년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로 바뀌었다. 영비법의 제정은 ‘영화와 비디오물은 연속적인 영상물로서 그 규율 대상이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영화진흥법과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이하 음비게법) 등 각기 다른 법률로 규율되고 있어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통합하여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아울러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영상물의 이용이 디지털과 온라인 형태로 변화하고 있어 이를 포함할 수 있도록 비디오물의 개념을 확대’하는 목적도 있었다. 이밖에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공정한 심의를 위하여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의 제척과 기피제도가 신설’되기도 했다.[각주:1]


영비법은 이후 10여 차례 개정되며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영화 진흥 및 규제 정책은 이에 기준한다. 하지만 변화하는 영상 미디어 환경과 영상 시장 환경 등은 영비법의 제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영비법 제개정 요구와 쟁점을 정리해본다.


현재 한국영화 시장을 관통하는 이슈는 ‘스크린 독점’이다. 2000년대 이후 상영업과 배급업을 수직계열화한 메이저 배급사가 등장한 이래, 매년 한두 편의 영화가 스크린을 독과점하는 현상이 반복되어왔다. 올해는 특히 한 편의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스크린 독점 현상이  자주 반복되면서, 상영 시장의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2007년, 당시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실이 멀티플렉스 독점 제한을 중점적으로 다룬 영화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복합상영관 경영자가 1개 이상의 상영관을 대안상영관으로 운영하도록 하는 것과 복합상영관에서 동시에 상영하는 영화 중 어느 영화가 일정 비율 이상을 점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개정안에 대해 극장연합회와 멀티플렉스 사업자 그리고 문화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은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지만, 영화인들의 관심과 지지는 상당했다. 이 개정안은 상정되었지만 처리되지는 못했고, 17대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되었다.


2012년 19대 국회가 시작되며 영화시장 독과점 규제에 대한 요구는 재점화 되었다. 과거 독과점 규제 요구가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점 현상을 막자는 것이었다면 최근의 요구는 다르다. 최근의 요구는 스크린 독점 규제와 함께 대기업의 제작업 참여 금지와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수직계열화 규제를 주된 내용으로 한다. 스크린 독점이 여전히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이런 현상의 이면에 보다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2009년 이래 한국 영화 상영 시장은 CJ계열(CGV/프리머스)과 롯데시네마가 70% 정도를 차지하는 독점적 시장으로 고착되고 있다. 여기에 메가박스를 더하면 3개의 사업자의 스크린은 전체의 90%에 달한다. CJ와 롯데의 경우 투자․배급업을 겸하고 있는데, 상영업의 독점적 지위를 기반으로 배급․상영은 물론 투자․제작에까지 막대한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 결과 직배 및 수입 외화 시장을 제외하고 국산 영화시장만 놓고 보면 과점 체제가 고착되었다[각주:2]

 

영화인들은 영화 시장의 독과점적 상황 때문에 영화 제작 및 유통 시장 전반에 불공정거래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고 인식하며, 영화업에 참여하는 대기업의 사업 제한 및 멀티플렉스 사업자의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실이 준비하고 있는 영비법 개정안은 이런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대기업의 영화제작업 참여와 대기업 상영업자 및 대기업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중소기업 상영업자의 배급업 참여를 금하는 것과 멀티플렉스에서 동일한 영화를 일정 비율 이상으로 상영하는 것을 금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하지만 대기업 영화 사업자들과 문화체육관광부 및 영진위 등은 이 개정안에 여전히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규제가 능사가 아니며 다른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상영․배급업의 분리를 요구하는 개정안의 기반이 되는 미국의 파라마운트 판결 등 반독점 규제는 1996년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의 제정 등에 의해 이미 철회되었고, 국제적으로도 미디어 사업자의 소유 규제 제한이 철폐되고 있는 상황이라 뒤늦게 규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미디어 사업자의 소유 규제 제한 철폐 등이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겠다.


1996년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을 제정할 당시 규제 폐지론자들은 규제의 폐지가 콘텐츠의 다양성, 수용자 복지의 향상, 대안매체의 성장 등을 이끌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법이 시행된 이후 미디어 독점이 심화되었으며 다양성도 훼손되었고 언론의 자유 역시 제한되고 있는 평가가 많다. 독점으로 인해 소비자 가격이 폭등하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도 하다. [각주:3]

 

과연 독과점으로 인한 한국영화 시장의 문제들이 규제를 하지 않는다고 해결될 수 있을까? 이미 시장의 실패가 드러난 상황에서 규제를 도입하지 않겠다는 것은 시장의 실패를 용인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법으로 규제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보상 중심의 정책만 펼쳐서는 곤란하다. 보상과 함께 감시와 응징 그리고 제대로 된 분쟁해결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영화의 또 다른 오랜 이슈는 바로 ‘표현의 자유’다. 특히 제한상영가 등급에 대한 논란은 매년 반복되고 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비타협영화집단 곡사가 영등위를 상대로 낸 ‘영화 <자가당착>의 제한상영가 등급분류 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는데, 이 판결로 제한상영가 등급에 대한 논란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기덕 감독의 신작 <뫼비우스>가 또다시 제한상영가 등급을 부여받아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자가당착>과 관련된 소송에서 재판부는 ‘영화의 상영등급분류를 통해 상영 및 관람의 자유가 상대적으로 제한되고, 영화제작자 등이 상영등급분류를 의식하여 영화내용을 스스로 수정·삭제하는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여지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상영등급분류에 관한 규정을 해석할 때에는 영화의 자유의 본질적 부분이 침해되지 않도록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하며, 영화의 주제 및 내용, 폭력성, 선정성, 예술성 등을 고려해볼 때 ‘이 영화가 제한상영가 기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움으로 일반 상영관에서 관람을 할 수 없게 한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결정했다. 무엇보다 제한상영관이 없는 국내 사정을 고려하면 사실상 국내 개봉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되었다.[각주:4]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한상영가 판정은 반복되고 있다. 

제한상영가 등급은 2001년 기존의 등급분류보류제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횟수 제한이 없어 실질적으로 영등위의 허가를 받지 않는 한 영화를 통한 의사표현이 무한정 금지될 수 있으므로 검열에 해당한다’고 판시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신설되었다. 2002년 제한상영가 등급이 도입된 이래 짧은 기간 제한상영관들이 운영되긴 했지만,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할 정도의 법적 제한으로 모두 폐관하였고, 최근 7~8년간 제한상영관으로 운영 중인 영화관은 전무했다. 제한상영가는 검열적 요소를 없애기 위해 도입되었지만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현실을 충분하지 반영하지 못했고, 제한상영관이 없어 실제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등급만 존재해 소모적인 논쟁만 계속 되고 있다. 


사실 제한상영가는 ‘영화 검열 시대의 잔재’로 불필요한 등급이다. 헌법재판소가 등급분류보류제도를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은 그것이 과거 상영허가를 규정한 영화검열제도를 변용한 것에 불과함을 천명한 것이다. 이 위헌 판결 이후 새로운 등급을 신설할 것이 아니라, 등급신청을 받은 모든 영화가 상영될 수 있도록 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개정 당시에  존재하지 않는 영화관을 가정하고 만든 등급은 결국 검열 시스템으로 돌아욌다. 영화등급제도가 청소년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 제한상영가 등급은 청소년 보호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 청소년 보호 등은 청소년관람불가 대한 입장 규제 강화 등으로 해결할 일이다. 청소년 보호를 위해 성인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어서는 곤란하다. 제한상영가 등급은 폐지되어야 하며 등급 신청을 한 영화는 모두 상영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완전한 등급제를 위해서는 ‘등급 받지 않을 권리’도 보장할 필요가 있다. 현행 영비법 제29조는 영화업자에 한 해 등급분류를 받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든지 상영등급을 분류 받지 아니한 영화를 상영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여 영화업자가 아닌 자들의 영화까지 상영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 행정권이 주체가 되어 허가받지 않은 의사표현을 금지하는 것으로 사전검열에 해당한다. 완전등급제의 성취를 위해서는 등급 받지 않을 권리와 등급 받지 않은 영화가 상영될 방안을 보완해야 한다.


현행 영비법이 제정된 지 7년이 지났다. 애초 영비법이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대응’하기 위해 제정되었다고는 하지만, 빠르게 변화한 현재 미디어 환경을 볼 때 많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변화한 상황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영비법의 개정도 요구된다.


현재 한국영화산업은 상영관 중심의 오프라인 유통 외에 온라인 유통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변화가 법에 충분히 반영되고 있지 못하다. 그에 따라 정책 생산과 집행에 장애가 발생하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이런 변화에 조응하기 위해 영화 및 비디오물의 개념을 확장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2011년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의 방향과 체계 제안’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목적은 네 가지로, 첫째 영화 및 비디오물의 통합법제로서의 기능 한계로 인한 법 체제 개편, 둘째 영화산업을 둘러싼 급격한 환경변화에 따른 유연한 대응, 셋째 영화산업 규제에 대한 적정한 규제방안 마련, 넷째 글로벌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각종 지원 근거 마련이었다. 


영비법 개정방안 연구가 제출한 영비법의 개정 방향은, 우선 현행 영비법의 제정 당시 진흥 중심의 영화진흥법과 규제 중심의 음비게법이 ‘이어붙이기’ 식으로 결합되어 있어 법체계를 일원화하고, 둘째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대응하기 위해 영화 및 비디오물 개념을 재구성․확장하고 아울러 콘텐츠산업진흥법 및 문화산업진흥기본법 체제에 조응하는 진흥체계로 정비하는 것이었다. [각주:5]

 

이를 통해 영비법이 다루는 산업의 범주를 영화산업․비디오물산업에서 영상산업을 확장․재편하고, 기금 중심의 기존 진흥체계를 일반예산을 재원으로 하는 진흥체계로 전환하며, 디지털 시네마 물론 유무선 인터넷․IPTV․스마트폰․태블릿PC 등 새로운 미디어플랫폼을 법적 규율 체계 안에 담아내고자 했다.[각주:6] 

 

이런 영비법의 개정 방향은 미디어 융합 시대에 한국 영화산업이 지향해야할 과제와 맞닿아있을 뿐 아니라, 영화를 포함한 영상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도 개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영화인들의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


[영화부산] 6호 (2013.06.28)

  1.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 이유 [본문으로]
  2. 김도학, 2013, ‘한국영화산업의 문제 진단과 나갈 방향’, “2013 영화단체 연대회의 포럼-영화영상산업, 평가와 전망” 참고 및 부분 인용 [본문으로]
  3. 김승수, 2003, ‘미국의 매체규제 완화 논쟁’, “방송연구 2003년 여름호” 참고 [본문으로]
  4. 서울행정법원, 2013.5.10. 2012구합36552 제한상영가등급분류결정취소 부분 인용 [본문으로]
  5. 황승흠 외, 2011,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 방안에 관한 연구’ 부분 인용 (전문은 정책연구관리시스템 프리즘 http://www.prism.go.kr 에서 확인 할 수 있음) [본문으로]
  6. 황승흠, 2012, ‘문화융합시대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방향’, “한국영화영상콘텐츠 산업의 미래를 위한 정책 컨퍼런스‘ 발제문 부분 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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