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V의 투자 배급이 독립영화 생태계를 위한 것이 되려면?

독립영화 2014. 5. 8. 12:01

이른 아침 오마이뉴스 성하훈 기자의 페이스북 포스트를 읽고 마음이 심난해졌다.


CGV쪽 말로는 "지원을 기대하고 있는 감독 제작자들이 많다"던데, 여론의 반전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doomehs/posts/742499429128714


라는 구절 덕분인데, 이해 못할 반응은 아니다. 


독립영화 배급사가 배급해 봤자 개봉 스크린은 20개 남짓이고, 상영횟수도 1일 20~30회 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한공주>로 대박을 터뜨린(영화관 누적 매출액이 15억원을 넘겼다) CGV에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다.


게다가 CGV가 투자/배급하고 유비유필름이 제작한 <우아한 거짓말>은 1백6십만명을 넘겼고, 영화관 누적 매출액은 117억 여원이나 된다(부가시장까지 감안하면 총 매출액은 더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CGV가 투자/배급할 또 한편의 영화 <도희야>(파인하우스필름/나우필름 제작)은 칸영화제에 갔으니 누구라도 CGV의 투자/배급/상영을 기대할만한 분위기다.


제작할 돈도 주고, 배급도 해주는데다, 스크린까지 많이 잡을 수 있는데 누가 그걸 거절할 수 있을까나...


하지만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저예산영화 혹은 독립영화의 생태계를 위해 바람직한 방향일까?


'나에게도 기회가?'라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투자/배급하는 메이저에 줄을 서는 영화산업의 모습을 독립영화 쪽에서도 보게 되는 것 같아 착찹하다. 그게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러지 말라고 하기도 애매하긴 하지만 마냥 이렇게 흘러가서는 곤란하다.


이렇게 금새 비주류 시장이 대기업의 니치 전략의 먹이로 전락(?)하고 있는데, 정책이든 현장이든 우려의 목소리가 크지 않은 것은 살짝 유감이다.


최근 아트버스터 어쩌고 하며 다양성영화의 성공사례로 부각되는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과 <한공주>는 중소규모의 배급사가 배급한 작품이 아니라 CGV와 이십세기폭스코리아의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CGV는 2013년 통계 기준으로 전극 극장수의 36%, 스크린수의 41%, 좌석수 41%의 1위 기업이며, 이십세기폭스코리아는 소니픽쳐스릴리징월트디즈니스튜디오스코리아,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유니버셜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등 4대 직배사 중 하나다. 두 사업자 모두 시장 내 메이저 사업자다.


<한공주>의 성공은 니치 콘텐츠로 성장을 도모하려는 CGV의 새로운 전략이고,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의 성공은 2012~3년 연속 직배사 중 꼴찌를 기록한 이십세기폭스코리아의 니치마켓 전략의 일환이다. 메이저 사업자의 영화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기획이었다. (CGV의 니치마켓 전략에 대해서는 이글 참조)



물론 메이저 사업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성공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번이 계기가 되어 다른 영화의 시장이 열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이 두 가지 사례가 텐트가 되어 다른 독립영화 배급사의 작품 배급에 기회를 부여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진심으로 그렇게 되길 기대한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현재의 구조가 개별 영화의 성공에 기여할 수 있는 있어도, 생태계를 풍성하게 할 구조라고 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CGV의 투자/배급 전략이 자신의 성장을 위한 니치 전략이 아니라 독립영화 생태계를 풍족하게 만드는 지원이 진짜 목표라면, 지금과 같은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CGV가 만든 장(場)에서 CGV가 직접 배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영화 배급사에게 기회를 주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투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투자까지는 가능할 수 있겠지만, 배급을 직접하는 것은 정말 아니다.



한국 독립영화 시장의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들고 싶다면, 독립영화의 성공작을 만드는 것 만큼이나 독립영화 쪽에 화폐가 흐르게 만들어줘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만약 <한공주>를 CGV가 아니라 다른 독립영화 배급사에서 배급을 했다면 배급수수료는 독립영화 쪽에 들어와 돌게 될 것이며, 다른 독립영화 제작배급을 위해 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한공주는> CGV가 배급을 했으므로 그 수수료는 전혀 독립영화 쪽의 화폐 흐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독립영화 생태계 확대가 목적이라면 배급 수수료까지 챙길 필요는 없다. 투자를 했다면 투자분 만큼의 합당한 이득을 취하고 극장 상영 수익만 취하면 된다. 제작자의 몫과 배급사의 몫은 독립영화 쪽에 흐르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CGV가 만든 장(場)에서 독립영화가 자생할 기반이 생긴다.


개별 감독과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배급을 CGV가 하든 어뮤즈가 하든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배급수수료는 제작자나 감독에게 들어오는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 독립영화를 생각한다면 CGV가 아니라 독립영화 배급사가 살아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 CGV는 언제든 독립영화 투자/배급/상영 사업을 접을 수 있지만, 독립영화 배급사는 그것을 위해 존재하는 생태계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한공주> 등을 통해 잘만든 독립영화에게 충분한 배급/마케팅 투자와 상영 기회가 존재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기회를 계속 CGV가 만들어가게 둘 것인가 아니면 독립영화 배급사에게 줄 것인가? 어느 것이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서 적절한 것인지 판단할 때다.


CGV 서정 대표의 인터뷰(출처 오마이뉴스 "저예산영화 지원이 목적? CGV의 '우아한 거짓말')대로 "한국 영화산업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CGV 무비꼴라쥬가 중저예산 영화에 대한 다양한 지원을 통해 인적 물적 지원을 교류함으로써 영화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를 기대"하는 것이라면, 정말 그렇게 되도록 하자. 배급 수수료까지 스스로의 몫으로 만들어 투자자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주식시장에 상장된 회사의 의무일지는 모르겠지만, 의도가 그게 아니라면 너무 많은 몫을 가져가지 말자. 그게 아니라면 대표의 인터뷰는 말그대로 '우아한 거짓말'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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