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독립영화 상영 공간 및 기회 확대 정책에 대한 제언

영화정책 2013. 6. 4. 10:27

전국 10개 지역영상위원회가 회원으로 있는 한국영상위원회와 전국 37개 지역문화재단이 회원으로 있는 전국문화재단연합회에서 독립영화(다양성영화) 상영관 운영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문화재단의 공간과 영상위원회의 예산이 결합하는 형태 등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독립영화 상영 공간과 기회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네요. 


하지만 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독립영화 관련된 일을 하면서, 지역의 문화예술회관이나, 도서관, 박물관 같은 문화기반 시설들, 혹은 대학들을 좀 더 활용해서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물론 의미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생각만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몇 가지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는데요. 제 경험과 생각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면


첫째, 지역의 문화기반시설들이 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곳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분명 문화 관련 시설이기 때문에 영화를 상영해도 관객들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영화를 상영해오지 않았다면, 그 곳에서 상영되는 영화에 관객들이 오게 하려면 다른 노력이 필요합니다. 관객들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일에 익숙합니다. 영화관이 아닌 다른 시설에 영화를 보러 오게 하는 것을 익숙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관객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둘째, 각 문화기반시설들에는 그 동안 사업을 꾸려온 자신만의 체계와 사업 구조가 있습니다. 영화 상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장비나 인력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죠. 게다가 영화 상영을 기획하고 추진할 인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사업이 안착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 상영 사업이 제대로 녹아들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특히 독립영화(혹은 다양성 영화)라면 그럴 가능성이 더 큽니다. 기본적으로 정보를 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경우도 공공문화기반시설을 활용해 독립예술영화 상영을 조직한 적이 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조직과 사업이 제대로 결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영화 상영 사업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처음엔 새로운 사업이라 관심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들인 노력 만큼 관객이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관객들에게도 그 공간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데다, 사업 담당자에게도 처음 하는 일이라 당장에 큰 효과가 나지 않죠. 그러다 보니 노력만큼 성과가 없어 쉽게 지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처음 관심을 가진 사업 담당자가 자리를 옮긴다거나 할 경우 사업은 쉽게 정체되거나 축소, 혹은 폐지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중복되어 나타난다면, 결국엔 좋은 시도였지만 성과를 내지는 못하게 될 겁니다. 심지어 "역시 독립영화는 안돼, 관객이 안들어, 관객이 이렇게 안드니까 영화관에서도 상영 못하는 것 아냐"하는 부정적 인식만 확대 재생산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업을 설계할 때,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우선 영화만 상영한다고 해서 관객이 오는 것이 아니란 걸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간이 있고, 상영하고 싶어하는 영화제작사/배급사도 있고, 관객도 있다고 하니 상영만 하면 관객이 오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물론 오긴 옵니다. 하지만 많은 관객이 오진 않습니다. 최근의 예를 하나 들면 경기도의 다양성영화관 사업에 맞춰 부천의 한국만화박물관에서도 독립영화 상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관객이 오지 않는다고 힘들어 하더군요.


영화 상영에 관객이 오게 하려면 그만큼 홍보가 필요한데, 그런 작업이 많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영을 하면 당연히 많은 관객이 오지 않겠지요. 상영공간이 아니라 제작사나 배급사가 홍보를 좀 더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현재 독립영화의 홍보 자원은 터무니 없이 부족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접근한다면,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상영 기회와 공간의 창출은 일방적으로 공간과 기회를 늘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 독립영화 배급과 적극적으로 발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 배급의 룰을 이해하고 그 배급력을 확대시키는 방식으로 가야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실망만 커지게 됩니다.


경기도가 시행하는 다양성영화관 사업의 경우 스크린 몇 개만 확보된 상태에서 상영작품을 공모하고 있는데요, 영화 배급과 상영이라는 게 단순히 스크린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란 걸 간과한 결과입니다. 경기도에 마련된 몇 개의 스크린이 독립영화 배급/홍보를 위한 충분한 자원은 되지 못합니다. 그냥 영화관에 영화가 걸리면, 감독이 알아서 홍보하고 관객이 알아서 올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다음에야, 그런 방식의 접근은 불가능하겠지요. 독립영화의 배급/홍보 능력을 확대시키는 것과 함께 스크린의 확대가 가야합니다. 


영화 산업의 속성 상, 기존 영화 제도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한 영화가 시장이 아닌 곳에서 호응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건 이미 알려진 이야깁니다. 

독립영화는 기존 시장에서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좀 더 성장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새로운 상영 기회와 공간의 창출은 기존 독립영화 역량을 확대하는 인큐베이팅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다고 모든 새로운 상영 기회가 극장 배급을 하는 영화만을 위한 기회가 되어야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관객들에게 익숙한 영화는 극장 배급을 하는 영화입니다. 이런 영화들이 덜 알려진 영화들도 관객이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유인책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도 합니다. 도서관, 박물관, 문에회관 같은 문화기반시설들에 영화 상영만 해도 관객들이 많이 온다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이 이 시장을 그냥 두지 않았겠죠. 극단적으로 말하면 영화 상영해서 돈이 되는 공간이 아니니까 그냥 냅두는 겁니다. 그런 공간에서 독립영화를 상영해서 많은 관객이 오게 하려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겁니다. 


상영 공간과 예산을 조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지역의 요구와 욕구들을 조직하는 것입니다. 

제가 서울 관악의 사례에 큰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역의 요구와 욕구들을 조직하며 지속적인 사업 모델을 고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흩어져 있는 요구와 욕구들이 제대로 조직되어야 관객이 늘어나고 사업도 성공하고, 독립영화에게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가 독립영화전용관 확대를 주장하는 건, 독립영화 쪽에 배급/홍보/마케팅 자원이 한정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 한정적인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독립영화전용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관객들에게 가장 익숙한 개봉관이라는 방식이고, 홍보 마케팅 역량도 한 공간에 집중될 수 있지요. 


길었습니다만, 영화진흥위원회와 독립영화 진영이 무언가 독립영화 배급을 확대하기 위한 사업과 조직을 만든다고 하니 일단 기대해봐야죠. 뭐든 하는 게 안하는 것보다 나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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