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위가 <홀리 모터스>에 제한상영가로 판정을 내린 것은 잘못이다

영화정책 2013. 4. 11. 17:32

레오스 까락스 감독의 <홀리 모터스>가 결국 성기 노출 장면을 블러 처리하여 청소년 관람불가로 개봉되었다.


<홀리 모터스>의 제한상영가 판정이 문제가 되었을 때,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는 링크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영등위는 이 보도자료를 통해 자신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흥미로운 주장을 하고 있다. 


영화 「홀리모터스」 제한상영가 결정 보도관련 정정보도 요청


흥미로운 주장을 살펴보기 전에, 과연 영등위의 이번 판정이 정당했는가를 먼저 짚어보자. 


영등위는 <홀리 모터스>에 제한 상영가 판결을 내린 이유와 '등급분류 기준이 모호하다'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명한다.


□ 첫째, 영화 <홀리모터스>는 2013. 3. 11일 우리 위원회의 등급분류 회의에서 “ 표현에 있어 주제 및 내용의 이해도, 폭력성, 공포 등의 수위가 높고 특히 선정적 장면묘사의 경우 수위가 매우 높다”는 의견으로 영화등급분류기준(시행일자 2012.8.18.) 제6조 5항(제한상영가 기준) 2호 중 “성기 등을 구체적ㆍ지속적으로 노출”하는 항목에 근거하여 제한상영가 등급으로 결정하였습니다. 관련된 장면은 남성의 성기가 발기된 채로 지속적으로 노출된 장면으로, 일부 보도 언론에서 이 영화의 성기노출을 4초, 30초 등으로 보도하고 있으나 실제는 1분 55초로 매우 길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 둘째, 일부 언론에서 성기노출이 포함된 영화들이 15세관람가, 청소년관람불가, 제한상영가 등으로 다르게 결정되는 것에 대해 “등급분류 기준이 모호하다”고 주장하는데, 지난해 총 117개 조항으로 개편한 현 등급분류 규정은 연령별 등급에 따라 신체 노출 정도와 선정성의 표현 정도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신체 노출과 관련한 규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15세관람가=“성적내용과 관련된 신체노출이 있으나, 특정부위가 선정적으로 강조되지 않은 것”(제6조3항2호가) 

◆청소년관람불가=“성적내용과 관련된 신체노출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으나 성기 등을 강조하여 지속적으로 노출하지 않은 것”(제6조4항2호가) 

◆제한상영가=“성기 등을 구체적, 지속적으로 노출하거나 실제 성행위 장면이 있는 것”(제6조5항2호나)


<홀리 모터스>에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린 것은 영화등급분류기준에 의한 것이었으며, 이에 따라 판정했으므로 정당한 것이라고 말이다. 아울러 '총 117개 조항으로 개편한' 등급분류규정에 의한 것이기에 '등급분류 기준이 모호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등급분류 규정은 나름 세부적이기는 하지만 모호하다. 각 등급 규정에 신체노출 정도를 구분하기만 하였을 뿐, 정작 내용은 여전히 모호한 말들 투성이다. 제한상영가에 해당하는 '성기 등을 구체적, 지속적으로 노출'이라는 표현이 모호하지 않다는 건가?


영등위는 <홀리 모터스>에서 문제가 된 장면으로 남성의 성기가 지속적으로 노출된 장면을 꼽는다. 과연 이 장면은 제한상영가에 해당할만큼 성기 등이 구체적, 지속적으로 노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홀리 모터스>에 성기가 노출되긴 한다. 하지만 이것을 구체적으로 노출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등위는 배우의 성기가 발기되었기 때문에 구체적이라고 판단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영등위는 '발기된 성기는 구체적 성기'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든 셈이다. 


영화에서 '구체적 묘사란 무엇인가'를 한 번 질문해 보자. 

이 경우 다루는 것이 '영화'라는 표현물이므로, 전체 시나리오의 맥락과 클로즈 업 등의 촬영 방법, 앞 뒤 씬의 편집 등 영화적 표현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연 영진위는 그렇게 판단했을까? 아니다. 영등위는 "관련된 장면은 남성의 성기가 발기된 채로 지속적으로 노출된 장면으로, 일부 보도 언론에서 이 영화의 성기노출을 4초, 30초 등으로 보도하고 있으나 실제는 1분 55초로 매우 길게 나타나고 있습니다"라고, 발기된 상태와 지속 시간만을 근거로 제시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무엇보다 영등위는 <홀리 모터스>의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릴 때, 본 법의 조항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했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화법) 제29조는 제한상영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5. 제한상영가 : 선정성·폭력성·사회적 행위 등의 표현이 과도하여 인간의 보편적 존엄, 사회적 가치,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 정서를 현저하게 해할 우려가 있어 상영 및 광고·선전에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 


이 말은 영화가 선정적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보편적 존엄이나 사회적 가치,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 정서를 현저하게 해할 우려가 없다면, 제한 상영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제한 상영가의 대상이 '선정성·폭력성·사회적 행위 등의 표현이 과도한 영화'라면, 굳이 다음의 단서는 필요없었을 것이다. 이 규정은 표현의 자유나 알 권리를 제약할 경우는 명시적인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야 한다는 것을 법으로 규정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과연 드니 라방의 발기된 성기가 "인간의 보편적 존엄, 사회적 가치,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 정서를 현저하게 해"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영등위는 해당 법 규정을 확대 해석한 등급분류 규정에 의해, <홀리 모터스>에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린 것이다. 


이 밖에도 해당 규정에 대해 토론할 것이 많으나 일단 이번 글에서는 여기까지만 하고, 이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야겠다. 

보도자료의 다음 부분이다. 영등위는 등급분류 제도의 역할과 한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셋째, 영화 ‘홀리모터스’가 칸 영화제 초청작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영비법(제29조)에 근거한 우리나라의 등급분류 제도는 영화의 예술성이나 작품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또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라도 각 나라마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유통 시 그 나라의 등급분류기준에 따라 상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등급분류 제도는 영화의 예술성이나 작품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고 친절한 설명, 이는 영등위의 역할에 대한 자의적 해석인데, 과연 타당한 자기 규정일까?


영등위의 설치 근거가 되는 영화법은 제71조에서 "영화 및 비디오물과 그 광고·선전물(이하 "영상물등"이라 한다)의 윤리성 및 공공성을 확보하고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하여" 영등위를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에 인용한 "우리나라의 등급분류 제도는 영화의 예술성이나 작품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영등위의 자기 규정은 해당 법률에 근거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영등위의 설치 목표는 이를 규정한 전체 영화법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규정되어야 마땅하다. 


영화법의 목적은 제1조에 잘 표현되어 있다. 영화법 제1조는 영화법의 목적을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영상산업의 진흥을 촉진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생활 향상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함"이라고 규정한다. 영등위는 이 목적 내에서 자신의 활동을 규정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등위는 우리나라의 등급분류 제도가 영화법의 목적 안에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예술성과 작품성이 있는 작품이 검열되지 않고 상영될 때 한국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질적 향상도 가능하고, 국민들의 문화적 소양이 높아져 문화생활도 향상될 수 있다. 영등위는 주어진 역할만 기계처럼 할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문화적 텍스트를 국민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맡은 기관임을 생각하고 일해야 마땅하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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