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도가니] 영화계의 문제가 곧 사회문제다

영화정책 2012. 12. 3. 10:51

4·11 총선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


4.19. 총선 이야기다. 너무 지겹거나, 다시 꺼내기에는 마음이 아린 분들이 꽤 계실 거다. 물론 결과에 안도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개인적으로 마음이 꽤 아리긴 하다. 그래도 어쩌겠나? 다시 앞을 보고 가는 수밖에. 각설하고 이번 선거에서 어떤 정당이 의석을 확보하는가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정당들이 어떤 문화정책들을 내놓을 것인가도 꽤 관심이 있었다. 특히 어떤 영화정책을 내놓을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각 정당의 정책 공약집을 훑어봤다. 결과는 기대 이하. 지난 4년간 많은 정책 집행의 오류들과 현안들이 있었음에도 공약에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는 못했다. 각 정당들은 이번 총선에서 어떤 관련 공약들을 내놓았는지 살펴보자. (분야별 정책 공약을 내놓은 5개 정당만 일별하겠다.)


먼저 새누리당. 없다. 독립된 문화공약 항목이 아예 없다. 영화 정책은 물론 없다. 관련 정책이라면 ‘K-POP의 성공 생태계 모델을 전략 장르별로 확대’하겠다는 것 달랑 하나다. ‘문화관광스포츠산업에서 공정거래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내용이 있지만, 달랑 한두 줄뿐이다. 자리 뺏기와 심사 청탁 외에는 내세울 정책이 없는 것일까? 


다음으로 민주통합당. “문화강국 실현과 생활형 문화정착으로 ‘문화로 행복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문화공약을 제출했다. 보편적 문화 복지와 지역 문화 활성화는 물론이고, 일상적 문화/체험형 정책을 펼치겠다는 계획도 있다. 현 정부의 경제우선주의, 이념논쟁, 단절적 정책에 의해 예술분야 지원이 ‘저하’되었다고 평가하며 예술분야 지원도 확대하겠단다. 예술인복지법을 발전적으로 개정하는 등의 정책도 있다. 영화에 대해서도 “영화진흥기금 출연을 확대 및 독립예술영화 지원 할당제 등을 검토”하겠다는 것과 “영화산업인의 미고용 기간 중 교육과 생활보조를 위한 ‘훈련 인센티브제도’를 확대”하겠다는 정책이 있다. 이 밖에도 많은 문화 정책들이 제출되어있어 새누리당과 확실히 비교된다. 


자유선진당은 어떨까? 문화관련 공약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문화·콘텐츠 산업 육성”하겠다는 원론적인 내용뿐이라 특이하게 소개할만한 것은 없다.


그렇다면 진보정당들은 어떨까? 통합진보당 역시 문화정책을 독립된 분야로 내놓았다. “문화예술을 누구나 누리게 하고 지역․계층 간 문화예술 불균형 해소하며, 예술인 창작 활동 지원과 권리 보호하고, 민족문화예술 발전과 문화다양성 실현”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특이한 것은 “연예인-기획사 구조 개선을 통한 연예인의 정당한 권리 보호”를 하겠다는 것. 영화와 관련해서는 예술인복지법 개정을 통해 실질적인 문화예술인복지 체계를 만들어내겠다는 것과, 지역/계층 간 문화예술 불균형 해소를 위해 지역마다 작은 문화예술공간을 만들거나 ‘커뮤니티 아트’ 개념을 도입해 지역별 문화예술 동호회를 활성화하겠다는 것, “문화다양성 협약과 문화기본권에 초점을 맞춘 문화기본법 제정” 등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를 특정한 정책은 없다. 


마지막으로 진보신당. 진보신당 역시 문화공약을 독립적으로 내놓았는데, ‘탈성장의 문화사회’라는 슬로건이 일단 눈길을 끈다. ‘탈성장 사회로의 문화적 전환, 문화산업/자본의 배타성을 넘어선 문화 다양성의 보장, 생산자와 향유자의 수평적 연대를 통한 문화공공성 강화’가 주요 의제다.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의 정책과 비슷한 부분들도 있지만 다른 부분들이 더 많다. 문화예술인 복지의 경우, 실업급여 제공 등을 넘어 예술인들의 생활권을 위한 입체적 정책들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문화 복지에 대해서는 ‘문화기본법’ 제정으로 차별화하고 있으며, 독립예술과 다원문화를 위해 ‘문화다양성법’ 등의 제정과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더 주목할 만한 부분은 ‘문화 검열제도/기구의 폐지’와 ‘독점구조의 문화산업 체계를 공정경쟁의 체계로 개편’하겠다는 공약이다. 표현의 자유 확대와 문화산업 독과점 해소는 영화계는 물론이고 문화예술계의 현안인데, 유일하게 진보신당만이 공약으로 내놓았다.


이미 지나간 선거 공약을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으시기도 할 테다. 하지만 총선이 끝났다고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지 않나? 문화예술계, 특히 영화계에 해결해야할 현안들이 있다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마땅하다.(게다가 연말엔 대선도 있다!)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정책을 제안하는 것은 내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일이 될 것이다. 


문화예술, 특히 영화가 그렇게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냐고? 그것만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중요한 것들도 많다. 하지만 다른 문제이 먼저고, 문화예술/영화는 그 다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문화예술/영화는 삶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연동되는 것이다. 영화의 문제들을 사회의 문제로 확대해서 보기도, 사회의 문제들을 영화계에 적용시켜보기도 해야 한다. 그런 관점으로 문제를 직시하고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중요한 게 아닐까? 그러다보면 세상이 정말 좀 더 나아질 것이라고 (최소한 나는) 믿는다.


원승환

한때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의 소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운영과 공동체 상영 활성화 등의 일들을 했다. 현재는 SNS에 ‘독립영화당’ 등을 만들어 활동하며 새로운 무언가를 도모하는 중. 독립영화에 관심 있는 경제학자를 찾아 헤매고 있다.(그런 분 계시면 연락 바란다.)



씨네21 (201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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