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협동조합의 역사 : 영화진흥조합 - 정부 주도의 영화협동조합

협동조합 2013. 4. 8. 15:11

협동조합 공부를 하다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국에서 흔히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농협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 농협이 제역할을 못한 게 협동조합에 대한 주목도를 떨어트린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협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자주적, 민주적 조직으로 육성되기 보다는 정권의 업무를 대행하는 준행정기관처럼 기능해왔으니까요. 농협의 경우 마치 정부 산하기관처럼 인식되어 왔는데, 어느 책을 보니까 협동조합과 정부가 너무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죽음의 키스'라고 표현하기도 하던데요.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떨어졌던 가장 큰 이유가 일반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협동조합인 농협이 준행정기관처럼 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당신의 쇼핑이 세상을 바꾼다-사람을 살리는 협동조합 기업의 힘>, pp29.)


1961년 8월 15일, 농업생산력 증진과 농민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농업협동조합법에 의해 설립된 농협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조합원들을 위한 목적과 계획 없이 정부에 의해 설립되었기 때문이라는 평가입니다. 정부가 만든 것이기에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조합원들 대신 정부만 바라봤고, 정권에 의해서 좌우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인데요, 정부의 주도 하에 만들어진 다른 협동조합들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기도 할테지요. 


한국 영화도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더군요.

1971년 2월 13일, 한국 영화의 진흥, 상호 공동이익 및 영화산업 육성을 위한 금융 사업 추진을 주요 목적으로 '영화진흥조합'이 설립된 적이 있습니다. 설립의 근거는 영화인들의 의지는 아니었고,1970년 8월 공포된 제3차 개정 영화법이었습니다. <한국영화정책사>는 영화진흥조합에 대해 민간 영화산업 종사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각종 진흥사업을 추진하는 자치적 협의기구라기 보다는, 국가와 현장 영화계 사이에서 문공부로부터 하달되는 영화시책을 시행/조율하는 중간 관리자 역할의 조직이라고 평가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초대 조합이사장은 문공부 문화국장을 역임했던 김진영 씨였고, 조합의 최고 승인권 등이 문공부 장관에게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영화정책사>, pp.353~354) 


영화진흥조합과 농업협동조합의 모습이 묘하게 겹치지 않나요?

그 때 당시 기사들을 보면, 영화진흥조합에 참여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부 시책이므로 참여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합원의 의지가 아닌, 정권의 의지로 만들어지는 협동조합이 제대로 된 협동조합이 될 수 없다는 건 영화진흥조합으로도 확인할 수 있네요.

이 두 사례는 모두 협동조합의 성공은 조합원들의 의지와 목적이 분명해야만 한다는 반면 교사가 되겠군요.


덧붙이자면, 영화진흥조합의 갈등의 내용을 보니, 현재 한국영화계의 세대 갈등의 시초가 영화진흥조합을 둘러싸고 시작된 갈등이 아니었나 싶더고요. 이 갈등이 영화진흥공사로 이어졌고 다음에는 영화진흥위원회로도 이어진 것 같습니다. 세대 갈등이라기보다는 이권 갈등의 성격이 더 강한... 으음... 


시작은 협동조합 공부였는데, 결론은 약간 이상한 곳으로 다다르고 말았네요. 흐.


영화진흥조합 이후, 1980년에는 한국영화제작협동조합(1983년 인가)과 한국종합촬영협동조합(1983년 인가)도 있었더군요. 

이 두 협동조합 이야기는 다음에 대충 해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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