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블랙박스] 블록버스터 전략에 맞설 자 누구인가

영화정책 2014. 11. 6. 15:48

2006년, 잡지 <와이어드(Wired)>의 편집장이었던 크리스 앤더슨이 쓴 <롱테일 경제학>의 영향은 엄청났다. 앤더슨은 이 책에서 아마존닷컴 등 온라인 판매의 예를 들며, ‘1년에 단 몇 권밖에 팔리지 않는 흥행성 없는 상품의 판매량을 모두 합하면, 놀랍게도 잘 팔리는 상품의 매상을 추월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앤더슨은 이를 바탕으로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에 더 맞는 상품을 찾을 수 있고 구매력도 있을 때, 인기상품이 아닌 니치 상품을 구매하게 될 것’이라는 과감한 예측을 덧붙였다. ‘롱테일’은 아날로그 시대와 다른 디지털 온라인 시대의 경제학으로 각광받았고 구글(유튜브), 넷플릭스 등의 미디어 회사의 비즈니스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블록버스터 전략은 생명을 다했고, 니치 전략이 중요하다’는 앤더슨의 주장과는 다른 흐름이 감지되었다. 영화산업의 블록버스터 전략은 여전히 중요했다. 2010년 워너브러더스의 3개의 텐트폴 영화는 전체 제작비의 33%를 들였지만, 미국 내 박스오피스 매출의 40%, 해외 박스오피스 매출의 50%를 차지했다. 반면 전체 제작비의 6% 미만으로 만들어진 저예산영화 4편의 미국 내 매출액은 4%, 해외 매출액은 1%로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음악산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큰 온라인 음원 판매처인 아이튠즈 스토어의 2011년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판매중인 800만 개의 음원 중 94%인 750만곡은 100회 이하로 팔렸고 이 중 32%인 256만곡은 단 1번 판매되었다. 반면 102개의 곡이 1백만 번 이상 팔렸고, 총 매출의 15%를 차지했다. 전체 판매 곡 중 0.00001%가 매출의 17%를 차지했다. 오프라인 앨범 판매도 마찬가지였다. 2011년에 최소한 1개 이상이 팔린 87만8천여 개의 앨범 중 13개의 앨범이 100만개 이상 팔렸고, 전체 0.001%가 매출의 7%를 차지했다. 앤더슨의 예측과 달리 전체 상품의 1%에서 매출의 80%가 나온 것이다. 앤더슨의 ‘롱테일’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분명 디지털은 ‘롱테일’의 기반을 마련하긴 했지만 이것을 수익으로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 결과 ‘롱테일’을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꾸려왔던 유튜브 등의 사업자들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해야 했다. 그것은 다시 ‘블록버스터’ 전략이었다. 그리고 ‘롱테일’의 자리에는 니치전략과 블록버스터 전략을 결합한 ‘니치버스터’ 전략이 채택되었다. 온라인은 기존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제휴하고 협력하는 방식으로 재편되는 중이다.


최근 <명량>이 기록적인 1500만 명의 관객을 넘어섰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있었지만, 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좌석 점유율로 논란을 돌파했다. 처음엔 공급이 수요를 창출했지만, 어느 순간 수요가 공급을 이끌어내는 모양새다. 최종 관객 수가 얼마가 될지 여전히 가늠이 되지 않는다. 총인구 5천만 명의 나라에서 2천만 명 이상이 보는 영화를 만날 가능성도 생겼다.


<명량>의 흥행 원인은 분명치 않지만, 한국 영화 시장에서 ‘블록버스터’ 쏠림현상이 점점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블록버스터 전략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3사가 시장의 90%를 지배하는 수요과점을 기반으로 계속 확대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를 제어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명량>은 영화 다양성의 디스토피아적 전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014.08.19. [씨네21] 9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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