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산업의 니치 전략에 대해 (2) - '소규모 개봉 - 장기흥행' 전략과 '니치버스터' 전략

영화정책 2014. 5. 30. 11:36

박찬경 감독의 다큐멘터리 <만신>이 어제 아트나인에서 종영을 했네요.

최근 2~300개 스크린에서 개봉하는 니치버스터 영화에 대한 관심이 큰 것 같습니다만, ‘소규모 개봉-장기흥행 전략’의 슬리퍼 히트도 여전히 주목할 만한 니치 전략입니다.

 

최근 개봉작 중에도 몇 편의 슬리퍼 히트작들이 있는데요, <만신>은 슬리퍼 히트작 중 한 편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만신>의 흥행은 다른 독립/저예산 영화의 배급과 비교해서 특이한 패턴을 보였고, 그 결과 다른 흥행 결과를 낳았습니다. <만신>의 배급사는 엣나인필름입니다.

 

3월 6일 개봉일 <만신>의 개봉 스크린은 84개, 상영은 총 169회 되었는데요. 스크린 당 2회 정도 상영된 셈이지요. 그리고 관객은 1,1787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개봉 첫 7일 동안 13,466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첫 주차 평균 좌석 점유율은 9.3%였습니다.

 

보통 소규모 개봉을 하는 영화의 경우, 개봉 첫 주 4일간 좌석점유율이 10% 이하면, 스크린 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런 경우 대부분 멀티플렉스 스크린에서 퇴출되며, 예술영화 스크린 중심의 흥행을 하게 됩니다.

 

<만신>의 개봉 첫 4일간 좌석점유율은 11.1%였습니다. 그리고 개봉 2주차, 스크린은 7일차 88개에서 57개로 줄어들었고, 상영 횟수는 162회에서 113회로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2주차에도 50개 이상의 스크린과 100회 이상의 상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2주차 관객 수는 9,609명. 2주차 평균 좌석점유율은 9.97%로 거의 10%에 가까웠습니다. 오히려 첫 주보다 좌석 점유율이 오른 겁니다.

 

그리고 3주차에는 30개 내외로 스크린 수가 다시 줄어듭니다. 3주차 첫 목요일의 스크린 수는 36개이고, 마지막 수요일엔 28개였습니다. 그리고 관객은 4,231명. 좌석점유율은 여전히 9%나 되었습니다.

 

4주 차 부터는 스크린이 10개 내외로 줄어들었고, 5월부터는 1개 스크린에서 롱런 체제로 들어갑니다. 3월 27일부터 4월 30일까지 5주간 관객 수는 4,867명. 평균 좌석 점유율은 무려 8%!

 

그리고 1개 스크린에서 하루 1회 내외로 상영된 5월 1일부터 28일까지는 335명의 관객이 보았고, 좌석 점유율은 20%나 되었습니다. 58석의 스크린에서 상영이 되었기 때문에 좌석 점유율이 높은 것입니다만, 1회 관객 평균이 15명 정도로 괜찮은 수였습니다.

 

보통 영화들이 개봉 첫 주에 가장 많은 관객을 모으듯, 독립/저예산 영화의 개봉 역시 개봉 첫 주가 가장 중요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개봉 첫 주 4일간 평균 좌석점유율 10%를 넘기지 못하는 영화들은 스크린 수와 상영 횟수가 절반 이하로 감소하며 이후엔 첫 주 관객 수의 20~50% 정도를 많을 때는 60% 정도를 모으는 패턴을 보입니다.

 

하지만 <만신>의 경우, 개봉 첫 주 13,446명보다 나머지 개봉동안 1.4배나 많은 19,031명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만신>과 비슷하지만, 개봉 첫 주 보다 이후 더 많은 관객을 모은 슬리퍼 히트작이 또 하나 있습니다. CGV가 배급한 다큐멘터리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입니다.

 

2013년 11월 28일 개봉한 이 작품은 개봉 첫날 30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67회 상영되었고, 첫 주말 관객은 5,281명이었습니다. 첫 주 평균 좌석 점유율은 9.1%. 개봉 첫 4일 좌석점유율은 10.8%였습니다. 롱런의 조건을 갖춘 셈인데요.

 

개봉 규모가 워낙에 작은 탓이었는지 2주차에도 30개 이상의 스크린 수가 유지되었습니다. 그리고 2주차 좌석점유율도 9%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 이후 어떤 성적으로 배급이 유지되었는지는 건너뛰고요, 결론적으로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개봉 2주차 이후 종영 때까지 2만 2천여 명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개봉 첫 주에 비해 4배가량 많은 관객을 모은 겁니다. 역시나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또 한 편의 슬리퍼 히트작은 이창재 감독의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입니다. 2013년 5월 23일 개봉한 <길 위에서>는 첫날 20개 스크린에서 31회 상영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첫 주 관객 수는 4,350명. 평균 좌석 점유율은 16%였습니다.

 

개봉 첫 주 이후 20개미만 스크린에서 장기흥행한 <길 위에서>는 매주 꾸준히 관객을 모았고 개봉 5주차에는 무려 좌석점유율 43%을 기록하며 6,542명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그야말로 꾸준히 관객을 모은 이 작품은 2014년 5월 14일까지 48,915명의 관객을 모았는데요. 개봉 첫 주의 10배에 달하는 엄청난 슬리퍼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최근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슬리퍼 히트작품은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입니다. 2012년 6월 21일 개봉한 <두 개의 문>은 개봉 첫날, 16개 스크린에서 26회 상영되는 초라한 규모로 개봉하였습니만, 개봉 첫 주에 8,650명의 관객을 모으며 대단한 기세를 올렸습니다. 개봉 첫 주의 좌석 점유율은 무려 30%. 역시 꾸준한 흥행을 이어갔는데요, 개봉 3주차의 관객은 15,379명, 평균 좌석점유율은 23%였습니다.

 

장기 흥행한 <두 개의 문>은 2014년 5월 21일까지 64,068명의 관객을 모았고, 이 수는 개봉 첫 주 관객의 7.4배나 됩니다.

 

슬리퍼 히트작들을 꼽아봤더니 다들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네요.

 

각 작품의 흥행 요소는 분명히 다르겠습니다만, 흥행 요소가 무엇이든 분명히 있는 작품의 경우, 제대로 흥행 전략이 구사된다면 성공의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급하게 일반화를 해보면, 다큐멘터리 영화의 경우 ‘소규모 개봉-장기흥행’의 니치 전략이 유효하다고 하겠네요.

 

극영화의 경우, 한국 영화 중 이런 패턴의 슬리퍼 히트작품이 최근에는 없습니다. 아마도 장르 간 흥행의 구조가 다르게 구축되어 왔기 때문인 듯합니다.

 

영화산업은 주로 극영화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고, 다큐멘터리는 시장의 변방이었죠. 극영화 중심의 배급 구조는 블록버스터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반면 없었던 다큐멘터리 시장은 ‘소규모 개봉-장기흥행 전략’이 가능한 최소한의 구조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예산 극영화의 경우는 ‘소규모개봉-장기흥행 전략’의 슬리퍼 히트작이 없고, 대신 <나는 공무원이다>의 기록적인 성공 이후 <한공주>, <도희야>처럼 다른 저예산영화들에 비해 큰 규모의 배급/마케팅을 하는 니치버스터 전략이 많이 채택되는 게 아닐까 싶네요.

 

뭐 이밖에도 영화의 질, 배급 시기, 배급사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하겠습니다만, 대충 정리하면 “극영화는 니치버스터 전략, 다큐멘터리는 ‘소규모 개봉-장기흥행 전략’이 지금까지 시장에서 드러난 가장 성공적인 니치 전략이다”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애니메이션 영화의 경우는 성공적인 니치 전략이 아직 없습니다. <사이비> 등의 성인 취향 애니메이션은 아직 니치버스터 전략으로 개봉된 사례가 없고요,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아동/가족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했지만, 기대만큼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습니다. 한국 독립/저예산 애니메이션의 성공은 극영화 같은 ‘니치버스터’전략이 더 유효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소규모 개봉-장기흥행 전략’을 취하려고 하는 프로젝트가 최근에 하나 준비되고 있기도 합니다.

 

3개의 멀티플렉스가 시장을 과점하고, 양극화되어 있는 지금 가장 유효한 니치 전략은 ‘니치버스터 전략’, ‘소규모 개봉-장기흥행 전략’, 이 두 가지가 되겠네요. 아마 당분간 한국 독립/저예산 영화의 ‘소규모 개봉-확대 개봉’이라는 니치 전략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소규모 개봉-장기흥행’ 전략을 취했던 영화가 놀랄 만한 성공을 하거나, 아니면 메이저와 인디 배급사간 협력 구조가 형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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