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007 EPL 27R. Man Utd Vs. Charlton : 2007.0210.

축구 2007. 2. 14. 00:32

지난 2월 11일은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모두 출전할 뻔 한 날이었습니다. 레딩과 아스톤빌라의 경기, 토트넘과 셰필드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찰튼 애쓸래틱, 그리고 첼시와 미들스보로까지. 설기현, 이영표, 박지성 그리고 이동국까지 모두 출전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날 정도는 아니니까요. 설기현은 레딩에서 '레딩의 넘버 7' 글렌 리틀에게 밀려 있으며, 이영표는 최근 주전이 보장되는 듯 했으나 여전히 주전자리를 확고하게 잡고 있진 못하고, 이동국은 보로로 간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다. 박지성 역시 긱스, 호날두 다음의 공격 옵션이지, 확실한 주전은 아닙니다.

경기 며칠 전 열렸던 A매치의 영향인 듯 이날 호날두는 리저브에서도 제외되어 있었고 박지성은 선발 출장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이런 경기에서 박지성이 뚜렷한 인상을 남겨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박지성은 주어진 기회를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경기 시작부터 슛을 하는 등 가벼운 몸놀림을 보이더니, 23분에 에브라의 크로스를 받아 멋지게 헤딩슛으로 연결, 팀의 첫번째 득점(이자 결승골)을 만들어 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선보인 첫번째 헤딩 득점이라는 데도 첫번째 결승골이라는 데도 의미가 있겠지만, 이날 득점은 박지성이 이제 팀 내에서 신뢰할만한 공격 성향의 날개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 것이라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의 첫번째 시즌이었던 지난 해 박지성은 골 에어리어 부근에서 강력한 공격성향을 보여주진 못했습니다. 직접 해결하기 보다는 어시스트에 충실한(?) 플레이를 보여주었지요. 그리고 많은 네티즌들이 지적했듯 박지성에게 좋은 슛의 기회가 쉽게 부여되지도 않았습니다. 중앙 미드필더인 폴 스콜스가 박지성에게 공격적인 패스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을 정도로, 첫 시즌 박지성은 골 문 앞에서 무언가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는 공격수로 동료에게 강한 신뢰를 주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날 찰튼 전 경기는 그런 아쉬움을 한 방에 날릴 만한 것이었습니다. 이번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격은 투 톱으로 나서는 사아(숄사르/라르손) - 루니와 왼쪽 날개 긱스, 오른쪽 날개 호날두가 자주 위치를 바꾸며 기회를 만들어가는 형태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긱스와 호날두가 자리를 자주 바꾸는 것은 기본이고, 사아와 루니가 상대팀 중앙 수비수를 유인하는 움직임을 보일 때, 호날두가 중앙으로 강력하게 파고드는 공격 형태도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투 톱을 이루는 사아, 루니 보다 호날두의 득점이 많은 것은 호날두가 페널티킥을 전담함은 물론 득점으로 이어진 프리킥도 있었기 때문이긴 하지만, 날개 공격수의 중앙 침투를 공격 전술로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호날두가 이 기회를 득점으로 많이 연결시켰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찰튼 전 박지성의 움직임은 호날두와 움직임은 다르지만 호날두의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대체한 것이었고, 득점 역시 날개 공격수의 중앙 침투에 이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시즌 중앙 공격수들이 수비수를 끌어내고 그 자리를 박지성이 담당하는 공격 형태는 별로 볼 수 없었습니다. 지난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크라이커 판 니스텔루이가 타겟형 스트라이커라 이번 시즌처럼 왼쪽-중앙-오른쪽 공격수 간의 위치 이동이 주요 전술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박지성의 마무리 능력이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니었기 탓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습니다. 에브라가 크로스를 올릴 당시 루니와 사아는 찰튼의 수비수들을 골 문 앞에서 전방으로 유인하는 움직임을 보였고, 찰튼의 골 문 앞에는 골키퍼 스콧 카슨과 (이번 겨울 시장 맨체스터 시티에서 이적해 온) 수비수 벤 대처, 그리고 박지성만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박지성의 헤딩 골은 중앙 공격수의 수비 유인과 오른쪽 날개의 중앙침투라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격 전술이 박지성이 선발로 나왔을 때도 자연스럽게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고, 박지성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멋진' 헤딩으로 마무리를 해 낸 것입니다.

에브라와 박지성의 포옹 이후, 루니와 사아, 플레처는 물론, 스콜스(!)와 수비수인 퍼디난드까지 포옹하며 축하한 것은 리그 19위 팀을 상대로 선취골을 넣었기 때문이 아니라, 동료들이 박지성에게 신뢰를 표현한 것이겠지요. 

(99일간의 부상에서 돌아온) 두번째 시즌에서 이런 활약을 보이고 이런 동료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면,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호날두 - 긱스를 잇는 세번째 날개 옵션으로서 자리를 확실하게 잡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만약 이번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현재의 전력과 경기력을 유지해 리그 우승은 물론, FA컵, 챔피언스리그까지 휩쓴다면 우리는 한국인 최초의 트레블을 기록한 선수를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직 멀고먼 여정이 남았고 그런 대단한 결과가 상상에 그칠 수도 있겠습니다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박지성을 보는 것, 그리고 성장하는 플레이를 보는 것은 매우 흐믓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곧 시작될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도 박지성이 뛰는 모습을 보게 되었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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