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을 파먹고 살기.

TRACE 2008. 12. 23. 02:12
글 제목은 저따위지만, 글 내용은 더 한심하다.
이 글의 요는 "자꾸 옛날 생각을 한다" 뭐 이런 것이다.

요지를 미리 쓰고 났더니 더 이상 무슨 말을 써야할지 갑갑하다.
위의 문장을 쓰기 전 그러니까 어, 글쓰기 페이지 열기를 누르고 담배를 한 대 피고 돌아오기 전까지 내가 쓰려고 했던 글은 저렇게 시작하는 것은 아니었다.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지 얼마되지도 않은 지금 어떤 문장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 황당하지만,
음 잠시 생각을 해보자.

아.마.도.

요즘은 미래의 일보다 과거의 일을 더 자주 생각한다.
한해가 바뀌는 12월의 말미라, 며칠을 더 자고 나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상식적 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그저 미래를 생각하는 것보다 과거를 생각하는 것이 더 편안하기 때문이랄까?
끝없이 불확실한 미래.
딱히 행복했다고 말하기 뭣하지만, 그래도 지나고 나니 되돌아 볼만한 과거.
이 둘 중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편하다.
"봄여름가을겨울", "김목경", "오석준", "빛과 소금", "정원영", "한상원"...
과거에 좋아했던 뮤지션들의 음원을 모은다거나,
"산울림", "믿음 소망 사랑", "시나위", "조용필", "이승철", "015B", "조덕배"...
과거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좋아하지 않았거나,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던 뮤지션들의 음원을 모은다거나
장정일의 시집이나 죠르쥬 바타이유의 헌책을 사모으거나,
보고 싶어했던, 혹은 가지고 싶어했던 보르헤스 전집을 구매한다거나
하는 일들은 분명 과거를 떠올리고 그때를 현재화하고자 하는 욕심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런 글을 쓰고 싶었겠지.
막상 쓰기 시작하니, 술술 써내려가지는군.
꽤나 시니컬 한 척 다음 문장을 써내려가고, 다시 제목을 올려봤더니.
위의 문장들이 꽤나 닭살스럽다.

닭살스런 문장을 쓰려고 했더니, 아마도 그게 싫었나 보다.
지난날을 파먹고 살기. 라니.

하지만 사실 아닌가?
뭐, 그 시절을 기억하는 것, 그 시절을 기억할만한 도구들을 사모으는 것.
그것으로는 역사, 너무 거창한가? 개인사, 음. 그래도 역사가 될 수는 없다.
그저 환기만 할 뿐, 그게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무슨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지 그런 것이 존재할 자리는 애시당초 없다.

라고 쓰기 전, 잠시
그저 환기만 할 뿐, 과거와 현재의 대화는 되지 못한다는 식의 좀 더 폼나는 문장을 고민했다.

처음 글쓰기 페이지를 열 때의 의도대로 생각보다 장문의 글을 하나 썼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께는 죄송하지만, 앞에서 쓴대로 이 글의 요지는 "요즘 자꾸 옛날 생각을 한다" 이런 거다.

그래도 읽은 몇 분의 시간이 아쉬운 분들을 위해 요지를 조금 더 늘여본다.

"요즘 자꾸 옛날 생각을 한다. 그래서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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