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시대, 독립영화의 '공존을 위한 연대'

독립영화 2008. 9. 9. 13:48


최근 몇 년간 한국 영화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는 ‘영화 산업의 독과점으로 인한 다양성의 훼손’ 문제입니다. 간추려 말하자면 대충 이런 이야기입니다.

한국영화가 산업화되는 과정에 배급, 상영을 메이저가 등장했고, 이 메이저 회사가 배급하는 영화에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게 되면서 투자-제작-배급-상영이 수직 계열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흥행 성공 가능성이 높은 거대예산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을 하게 되었고, 수직계열화의 결과로 거대예산 블록버스터에 상영 기회가 많이 제공되었으며,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영화는 상영 기회를 잃게 되었다.

저도 이런 저런 자리에서 스크린 독과점의 폐해나 영화산업 독과점의 욕망을 규제해야한다는 종류의 이야기를 많이 해왔습니다. 특히나 독립영화 쪽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독과점의 피해자(?)’로 이런 이야기들을 할 기회가 많았는데요, 이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한국 외의 다른 나라의 예술영화 상황은 어떠한가’라는 질문들을 받을 때였습니다. 이런 질문은 정말 다른 나라의 상황이 궁금해서 나오기도 하지만,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은데 유독 우리나라만 그렇다’라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던져지기도 합니다. 후자의 경우 아마 다른 나라에서는 영화 문화의 다양성이 지켜지고 있다면 상대적으로 우리의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 있게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전자의 의도에 따라 질문을 받을 때는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외국의 상황들을 이야기해 주겠지만, 후자의 의도를 가지고 질문을 하는 경우라면 답변하기가 곤란해집니다. 그것은 (제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대부분 나라의 영화 문화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심한 양극화가 진행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문화가 소비되는 나라로 알려진 일본에서도 독립영화(일본식으로 표현하자면 자주영화)와 다큐멘터리, 그리고 유럽 아트하우스 영화들은 점점 관객의 외면 속에 시장을 잃어 있으며, 이런 영화들을 상영해 왔던 미니 시어터들은 몇 년 사이 40% 이상 줄어들었습니다. 유럽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영국의 경우 90년대 후반에 이미 배급시장에서 45%의 배급사들이 단 한편의 영화만 배급할 정도로 독립영화 시장은 황폐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유럽 시장에서 성공할만한 예술영화 작품들은 메이저 회사를 통해 배급됨에 따라 작은 규모의 독립배급사들은 공공기금의 지원이나 메이저 회사와 제휴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외국에 대한 직접배급과 직접투자 등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글로벌 전략과 각국의 로컬 영화산업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몸집을 불리고, 영화의 예산규모를 키우는 등의 유사 할리우드 전략을 구사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오늘날 영화 산업의 양극화와 다양성의 훼손은 일국적 문제가 아니라 전지구적 문제입니다. 규모를 갖추지 못한 영화들은 시장에서 배제되어 상영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결과 제작도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틀 내에서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국가라는 틀을 벗어나 상호 연대하고 보다 넓은 틀에서 대응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는 시장이라는 조건을 경유하지 않고 서로의 영화를 보고, 서로의 상황들을 이해하는 이런 상호 이해 속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했던 ‘ACF 쇼케이스’에 이어 인디스페이스가 선보이는 ‘일본 다큐멘터리 특별전’은 바로 이런 고민에서 출발합니다.

인디스페이스는 더 먼 곳의 독립영화를 소개하기에 앞서 매년 아시아의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조금씩 상호 연대의 틀들을 만들어 갈 예정입니다. 이런 하나하나의 작은 기획들이 ‘한류’로 대표되는 제국주의식 접근이 아닌 ‘공존을 위한 연대’를 만들어 가는 소중한 씨앗이 되길 기대합니다. 아울러 ‘일본 다큐멘터리 특별전’을 통해 많은 독립영화인들, 관객들과 함께 조금씩 고민들을 나누고 키워가기를 기대합니다.

2008.09. 인디스페이스 소식지 INDIESPACE on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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