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와 영화 장르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독립영화 2008. 9. 9. 13:22
2008년 여름, 인디스페이스의 키워드는 ‘장르’입니다. ‘인디파르페’에서는 ‘한국독립영화장르전’이라는 부제대로 한국 독립영화를 액션, 멜로드라마, 호러 장르로 걸러 선보이고 있으며, 함께 진행되는 ‘트로마 인 서울’은 호러를 중심에 놓고 다양한 장르들을 교배시키는 트로마 엔터테인먼트의 영화들이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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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를 키워드로 독립영화를 선보이는 것은 관객이 영화를 선택할 때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분류 방법이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장르’는 흔히 특정한 약호와 관습이 공유된 영화를 분류하는 방식이라고 인식되지만 ‘장르’는 ‘관객’과 관련된 것이기도 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장르’ 영화는 영화에 대한 관객의 어떤 ‘기대’가 있음을 미리 설정하고,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액션’ 장르는 주인공이 악을 응징하는 스토리와,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활극 장면, 자동차 추격 장면, 대규모 폭파 장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객은 ‘액션’ 영화를 보러 갈 때, 그런 이야기와 장면들을 기대합니다. 기대가 충족되면 만족스러운 관람이 되는 것이고, 기대를 뛰어넘을 때는 영화에 열광하게 되며, 기대 이하일 때는 외면합니다.

이렇듯 ‘장르’는 입장권을 구매한 후에야 영화를 볼 수 있는 관객에게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합니다. 관객은 전체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장르’ 분류라는 틀 속에서 영화를 볼 것인지 아닐지를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독립영화를 장르로 재구성해 선보인다는 것은 바로 이런 ‘관객 기대 - 충족’ 메커니즘을 통해 관객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르’로 독립영화를 사고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화에서의 ‘장르’가 관객의 욕망이라기보다는 거대 산업(혹은 자본)의 욕망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르’는 영화 산업에게 시장 성공의 불확실성을 통제하는 전략입니다. 특정 종류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경우, 성공한 영화의 패턴을 반복하는 ‘상품화 전략’이 바로 ‘장르’인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독립영화와 ‘장르’간의 복잡한 문제가 발생됩니다. ‘장르’를 채택하거나 탑재하는 것에 대해 다른 고민이 없을 경우, ‘장르 전략’은 거대 영화 산업의 욕망을 답습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 경우 독립영화는 활력을 잃고, 거대 산업에 자발적으로 편입되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맞게 됩니다. 90년대 중반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 이후, 미국 독립영화 진영은 한때 ‘네오 느와르’로 불렸던 영화들을 대거 제작되는 붐이 있었으나, 얼마 못가 거품이 빠진 사례는 독립영화가 ‘장르’를 다루는 것이 얼마나 섬세한 판단을 요구하는가에 대한 반면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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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독립영화와 ‘장르’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유일한 정답은 아니지만 올해 인디스페이스는 트로마 엔터테인먼트의 영화들을 가능한 방법 중 하나로 제시합니다. 거대 영화 산업의 장르가 아니었던 ‘호러’ 장르를 중심 전략으로 채택한 트로마 영화들은 ‘장르’를 통한 ‘관객 기대 - 충족’ 메커니즘을 작동시켰지만, 절대 주류에 수용될 수 없는 표현 전략과 불온한 스토리를 채택함으로써 ‘산업의 욕망’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며 지금까지 존재해 왔습니다. 2000년대 이후 과거만큼의 위세는 없지만, 트로마는 미국의 하드 코어 독립영화로서 역사적인 한 축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인디파르페’와 ‘트로마 인 서울’ 그리고 인디스페이스의 첫 외국영화 개봉작인 <카니발 더 뮤지컬>은 독립영화의 장르 전략을 보다 본격적으로 고민해 보자는 하나의 제안이기도 합니다. ‘장르’를 개별 텍스트 분석의 도구로만 활용하거나, 산업의 욕망으로만 치부해 버리지 않는 생산적 토론이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2008.08. 인디스페이스 소식지 INDIESPACE on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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