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로 먹고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 독립영화와 경제적 관점에 대해

독립영화 2013. 8. 30. 10:00


예전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일하던 시기에 “독립영화를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라는 생각을 자주했다. 실현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독립영화가 하나의 ‘직업’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독립영화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 다른 일을 하거나, 그만 두는 선배나 동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은 점점 커져갔고 고민도 깊어졌다. 


무엇보다 독립영화가 ‘영화적 전통’을 가지려면 오래 독립영화 활동을 하는 선배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독립영화로 먹고 사는 일이 가능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다음 세대에게 ‘주류 영화만이 아닌 다른 가능성이 생긴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독립영화로 먹고 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영화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만든 영화로 경제 활동이 가능해야 할 것 같았다. 노동으로 만든 영화가 노동만큼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결국 경제 활동을 위해 또 다른 노동을 해야 한다. 독립영화로 경제 활동이 가능하게 하려면 영화가 팔리든, 관객이 (적절한 금액을 지불하고) 더 많이 보게 하든, 이런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생각한 방안이 “독립영화 배급의 활성화”였다.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일하던 시절, 독립영화 배급을 확대하는 일에 열심이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배급과 관련된 고민을 하면서 “독립영화 배급을 구조화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독립영화 배급지원센터를 통해 공동체 상영 네트워크를 만들고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독립영화전용관 운영을 통해서 독립영화 배급사들을 네트워크하면서 늘 독립영화 배급이 구조화되길 기대했다. 


그 결과 전국적으로 독립영화 상영이 늘어났고, 독립영화 배급사가 하나 둘 생겨났다. 나름 ‘독립영화 배급’이라고 부를 만한 구조가 갖춰진 듯 했다. 그런데 여전히 독립영화로 먹고 사는 일은 가능하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인걸까?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 독립영화를 ‘경제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경제학 공부’를 시작했다. 독학이라 주먹구구식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필요하니 ‘경제학’이라는 단어 앞에 ‘문화’, ‘영화’, ‘콘텐츠’, ‘엔터테인먼트’라는 말이 붙은 책이면 무조건 읽었다. 경제관념이라는 게 아예 없어서 ‘예금’과 ‘적금’의 차이도 2012년에야 알게 된 사람에게는 무모한 일이었지만, 필요한 것이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독립영화를 경제적 관점으로 사고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무지한 탓도 있었지만, 나처럼 독립영화를 사고하는 동료들이 거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물어볼 사람도, 토론할 사람도 별로 없었다. 나조차도 얼마 전까지 독립영화에 ‘경제’나 ‘산업’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에 대해 대한 거부감이 있었으니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독립영화는 왜 경제적 관점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일까? 아마도 독립영화는 반상업적이어야 한다는 생각, 독립영화에게는 이윤을 남기는 것보다 문화적/예술적/사회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독립영화를 정의할 때 자주 등장하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말을 ‘상업성으로부터의 탈피’로 해석하고, 이런 해석들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경제적 관점에서 독립영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불편하고 불필요한 것이 되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또 다른 이유로 독립영화의 경제적 가치가 낮다는 것을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개봉한 독립영화 중 제작에 들인 비용 이상의 수익을 올린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의 영화의 ‘수익률’은 마이너스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익률이 낮다는 말은 가치가 작다는 말과 동의어로 봐도 무방하다. 경제적 가치를 이야기하면 독립영화의 가치는 낮아지기 때문에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아니 할수록 손해다. 다른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 이익인 셈이다.


물론 독립영화 진영도 가끔 경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긴 한다. 독립영화가 개봉하기 시작하면서 등장한 ‘1만 관객 성공론’이다.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독립영화에게 1만 명의 관객은 상업영화의 1백만 명과 같다’는 이 주장으로, 1만 관객은 ‘독립영화의 의미 있는 순간’이 되었다. 하지만 1만 명의 관객이 들어봤자 수익은 4천만 원, 배급마케팅비 정도를 회수할 수 있는 수준일 뿐이다. 


독립영화가 경제적인 이야기를 하는 가장 적극적인 순간은 거대자본을 이야기할 때다. 독과점, 수직계열화 등의 표현은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더 나아가지는 못한다. 영화 자본의 독과점이 문제인 것까지는 이야기를 하고 시장이 공정해야한다고는 이야기를 하는데, 독립영화에게 필요한 시장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경제적인 방식으로 독립영화에 접근하는 것이 불편할 수는 있다. 하지만 불필요한 일은 아니다. 10년이 넘게 진흥정책의 수혜 대상이 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의 제작, 유통 등의 토대가 튼튼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 관점에서 독립영화의 미래를 설계하지 못한 탓은 아닐까? 독립영화 스스로 경제적 관점에서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니, 정책 또한 그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독립영화로 먹고 살 수 있으려면 독립영화 활동을 경제 활동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영리적 활동도 중요하고 시장 밖의 고유한 영역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시장을 통해 독립영화를 유통하고, 그 안에서 경제적 가치를 획득하는 것도 그만큼이나 중요하다. 영화 시장을 통해서 주로 영화를 접하는 세상에니 시장을 고민해야 한다. 시장 안의 경제 활동으로 기능하게 해야 한다. ‘복지’만으로 경제적인 삶이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물론 모든 독립영화가 시장을 경유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독립영화인이 경제 활동으로 독립영화를 꿈꾸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모든 영화가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장의 성공이 영화적 성공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경제적 접근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경제적 방식으로 독립영화를 재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경제적 접근은 독립영화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독립영화 경제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확장’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지도 가끔 토론해보면 좋겠다.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 KMDb (201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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