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 독립영화와 지역 영화 발전의 동력, '영화 협동조합'을 제안한다

협동조합 2012. 12. 21. 11:56


2012년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을 앞두고 협동조합 바람이 불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농업협동조합, 수산업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산림조합,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중소기업협동조합, 엽연초생산협동조합 등 특별법에 의한 경우만 협동조합 설립이 가능했다. 하지만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 5인 이상이면 누구나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시장과 정부가 실패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고, 법 시행에 맞춰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전라북도, 경기도 등 지역자치단체들도 지역 경제와 공동체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협동조합을 위한 조직 개편과 조례 제정 등을 하고 있다. 선거를 앞둔 대통령 후보들도 협동조합이 경제 민주화의 촉매제가 되고, 사회적 경제 성장의 기반이 되며, 고용 창출의 역할 등을 할 것으로 기대하며, 협동조합 활성화를 중요한 정책으로 제출하고 있다. 도대체 협동조합이 무엇이기에 이러는 걸까?


협동조합, 정책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최근 협동조합이 주목받는 데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영향이 컸다. 금융 위기 당시 많은 금융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정부의 구제 금융을 받았고, 일반 기업들도 정리해고 등으로 고용을 줄였고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들도 있었는데 바로 협동조합 기업이었다. 협동조합 은행은 구제 금융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예금이 늘어나는 등 성장을 이어갔고, 일반 협동조합 기업의 경우도 고용을 유지하는 등 위기에 강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협동조합의 안정적 운영과 성장에 모두가 놀랐고, 국제연합(UN)도 마찬가지였다. UN은 세계 경제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협동조합에 주목했고, 2009년 12월 총회에서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선포했다. UN은 결의문을 통해 ‘협동조합이 여성, 청년, 고령층, 장애인, 원주민 등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사회ㆍ경제적 발전에 참여를 촉진한다’며 사회적 역할을 인정하고, ‘빈곤감소, 고용 창출, 사회통합에서 협동조합의 기여를 강조하면서 협동조합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회원국들이 관련법과 행정규제를 정비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세계적 움직임에 발맞춰 우리나라에서도 협동조합 정책의 변화가 시작됐다. 기존 특별법 체제로는 변화된 경제 여건을 따라가기 힘들다고 판단해, 2010년부터 정부차원에서 기본법 제정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생활협동조합 등 활동을 꾸준히 해온 민간의 역량과 정부의 의지가 맞아떨어져 2011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됐다. 협동조합기본법은 대부분의 입법 과정이 정치적 견해차에 따라 갈등과 충돌을 빚었던 것과는 달리 의결에 참여한 여야 국회의원 전원의 찬성으로 가결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만큼 기대가 컸다는 말이다.


민주적 소유와 운영 구조로 위기에 강한 협동조합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협동조합은 기존까지 많이 봐왔던 주식회사와는 다른 형태의 소유와 운영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소유자는 소수의 창업가나 주주가 아니라 조합원 전체고, 의사 결정 역시 ‘1주 1표’가 아니라 ‘1인 1표제’로 운영된다. 조합원 모두가 동등한 이런 민주적 구조는 소수의 사람들이 기업 운영을 독점하며 전횡으로 무리한 투자나 부실한 사업계획을 애초에 실행할 수 없게 한다. 민주적 소유와 운영 구조로 인해 협동조합은 경제 위기에 강할 수 있었다.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하여 공동의 경제ㆍ사회ㆍ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의 자율적 조직’이라는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정의는 협동조합의 특징을 잘 요약하고 있다. ICA는 100주년 총회에서 ①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 ②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 ③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④자율과 독립 ⑤교육, 훈련 및 정보 제공 ⑥ 협동조합 간의 협동 ⑦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등 협동조합 설립과 운영을 위한 원칙을 발표했다. 이 원칙들은 어떻게 협동조합이 자본주의와 다른 시장 경제 양식이 될 수 있었는지 잘 설명해 준다. 협동조합은 모든 경제 주체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경제학의 일반적 견해와 다르게 ‘공동의 필요와 욕구’를 강조한다. 이런 견해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자본주의 기업이 노동을 고용해 ‘이윤’을 남겨 주주에게 배당하는 것과 달리, 협동조합 노동은 자본을 고용해 ‘잉여’를 남겨 조합원에게 배분하거나 사업에 재투자하며, 지역 사회에 환원해 왔다. 독점의 욕망이 아니라 연대의 실천으로 사회적 경제를 실현해 온 것이다.


미국, 캐나다에서 배우는 지역 영화 협동조합 활동들


협동조합은 자본 중심의 시장에서 소외된 독립영화나 지역영화의 동력이기도 했다.

미국의 독립영화 제작과 배급의 역사는 영화인 협동조합의 역사이기도 했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두 개의 주목할 만한 영화인 협동조합이 설립됐다. 뉴욕을 기반으로 한 THE FILM-MAKER’S COOPERATIVE, 캘리포니아를 기반으로 한 Canyon Cinema가 바로 그것이다. 각각 동부와 서부를 대표하는 이 영화인 협동조합들은 독립영화의 제작과 투자, 홍보와 배급 확대를 목적으로 한 영화인들의 자조적 단체였다. 미국 독립영화인들은 협동조합을 통해 독자적인 영화 제작-배급 구조를 구현할 수 있었다. 케네스 앵거, 브루스 베일리, 스탠 브래키지 등 미국의 대표 독립영화 감독들의 영화가 협동조합을 통해 배급되었다. 협동조합은 지금도 자본의 간섭을 거부하고 개인의 영화적 비전을 펼칠 수 있는, 함께 검열을 거부할 수 있는 독립영화의 새로운 투자 모델을 만들어갈 기반이 되고 있다. 


협동조합의 천국 중 하나로 꼽히는 캐나다에도 Atlantic Filmmakers’ Cooperative, Island Media Arts Co-op, Independent Filmmakers Co-operative of Ottawa, Newfoundland Independent Filmmakers’ Co-op, New Brunswick Filmmakers’ Co-operative, Saskatchewan Filmpool Cooperative 등 많은 영화인 협동조합이 활동 중이다. 캐나다의 영화인협동조합은 미국 영화인 협동조합보다 지역 영화 공동체의 성격이 강하다. 캐나다의 영화인 협동조합은 지역 영화 제작은 물론 재정 지원 및 장비와 시설 임대, 제작 워크숍,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운영, 영화 상영 등 영화 제작과 교육을 위한 센터로 기능하고 있다. 


영화 제작/배급, 교육을 위한 협동조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관객이 주인이 된 영화관 협동조합도 있다. 미국 일리노이 주 샴페인 카운티에는 독립·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해온 100년 전통의 아트 씨어터가 있다. 이 극장은 디지털 전환과 안정적인 운영 등을 위해 추가 투자가 필요했는데, 관객이 직접 소유자가 되는 협동조합 전환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예술극장 만이 아니다. 미국 미네소타 주 스티븐슨 카운티 모리스는 인구수가 5천여 명밖에 안 되는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극장이 있다. ‘모리스 극장 협동조합’이다. 1940년 설립된 모리스 극장은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2010년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시민이 주인인 협동조합 극장이 되면서, 영화관은 필요한 투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고, 전환 이전 보다 훨씬 더 지역 공동체의 중요한 문화공간이 되었다.


협동조합 자체가 성공적인 미래를 무조건 보장하는 수단은 아니다. 하지만 지역 영화 활성화를 고민한다면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쳐나갈 사업 조직을 만들고 실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동체에 기반한 협동조합은 지역 영화인의 자조적 노력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영화 부산] Vol.3 (201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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