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 돌파구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독립영화 2007. 5. 10. 13:54
시작하며

오늘 발표할 이 오픈 토크 발제글을 쓰기 위해, 2007년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북을 뒤적이다가 문득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가 너무 많은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개월 전 과거 여당이었던 어느 당의 한 국회의원은 이른바 ‘예술영화관’이 많이 만들어져도 공급할 콘텐츠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사실 최근에는 과거에 비해 다양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독립)영화인들의 노력과, 이러한 노력의 요구에 따른 제작지원 정책 등으로 인해 상당한 수의 저예산/독립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만 하더라도 [한국영화의 흐름] 섹션과 [HD영화 특별전]에는 개막작품인 <오프로드>를 포함해 거의 15편에 이르는 저예산/독립영화들이 상영이 됩니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영화제 등을 통해 공개된 작품들의 전부가 아니므로, 2006년 하반기에 열렸던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의 상영작들에다 전주국제영화제 이후 개최될 인디포럼2007에 상영될 작품들을 고려해 보면 작년 하반기 이후 만들어진 저예산/독립영화만 해도 20~25편을 훨씬 상회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개봉한 몇 편의 영화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화들이 2007년 개봉 상영을 준비하겠지요.

그러나 앞서 언급한 최근작들만 2007년 개봉 상영을 준비하는 것은 아닙니다. 2006년 상반기 이전에 제작되었던 많은 영화들도 개봉을 하지 못해 올해 개봉을 추진하고 있으며, 훨씬 이전에 제작된 영화의 경우에도 여전히 개봉 상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저예산/독립영화가 겨냥하는 시장을 통해 공개되어지는 영화들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 인정을 받는 영화들은 아니지만, 케이블/위성 방송 PP들이 제작하는 저예산영화도 있으며, 새롭게 영화업에 진출하는 기업들이 선보이는 저예산 프로젝트들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경우들을 통해 제작되어질 작품들을 추정해 보면, 꽤나 상당한 숫자의 영화가 저예산/독립영화의 시장을 두고 경쟁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 제작 증가에 대한 불안

다양한 영화가 제작되어야 하기 때문에 제작지원 정책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독립영화 진영의 활동가가 ‘영화가 너무 많은 것은 아닌가?’라고 질문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닌가? 그게 무슨 문제인가?’라고 반문하실 분들도 있으시겠지요. 물론 자본이 허락하지 않는 다양한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늘어나는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들의 제작 편수를 감당할 만큼 상영관들이 안정적으로 보장될 것인가 하는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제작 편수의 증가만큼 관객이 증가할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영화가 만들어져도 영화를 상영할 극장이 없다면, 관객들을 만날 기회는 원천적으로 봉쇄당하겠지요. 이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나 상영을 한다고 해서 매번 일정한 관객 수가 보장되지 못한다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어렵사리 개봉을 해도, 많은 관객들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냥 개봉 자체가 의의가 되고 마는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극장에서 많은 관객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여러 부정적인 결과를 연쇄적으로 낳습니다. 극장 수익이 적을뿐더러, 관객이 많이 들지 않은 영화는 이른바 부가판권(DVD 판권, TV 방영권 등)도 팔리지 않습니다. 더 이상 수익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지요.

이것보다 더 부정적인 것은 관객을 만나지 못하는 영화가 한 편, 두 편 쌓여가면서 이 부류의 영화들에 대해 ‘재미가 없다’라는 등의 부정적 인식이 두껍게 쌓여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들은 안정적으로 저예산/독립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애당초 만들지 못하게 합니다. 늘어나는 공급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내지 못하면 자연스레 경제적으로는 공황을 맞게 됩니다. 2006년 한국영화제작산업의 수익률 악화는 바로 ‘과잉공급’ 때문이었습니다. 여태껏 수익률이라는 고민을 시작도 해보지 못한 저예산/독립영화 제작에 있어서 일정한 규모를 갖춘 영화들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수요가 늘어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영화의 순환구조가 만들어지지 못하는 것이지요.

다행히 오늘 오픈 토크에서 다루는 것처럼 2006년 다큐멘터리영화 <사이에서>, <비상>과 독립장편영화 <후회하지 않아> 등의 영화가 시장에서 일정한 규모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고, 적은 숫자이지만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기에 꽤나 고무적인 상황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문제는 이런 몇 편의 성공 케이스들을 어떻게 더 많은 영화에게로 확대하느냐가 되어야 합니다. 몇 편의 성공 케이스를 통해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의 시장 연착륙을 위한 조건들을 찾아보자는 것이 바로 이 오픈 토크의 목적이니까요. 하지만 2007년 한국의 영화 시장은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기회가 만들어지는 것에 비해 닥쳐온 위기 상황이 너무 압도적으로 보입니다. 2007년 이후 다가올 위기 상황에 대해서는 좀 더 뒤에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먼저 어떻게 해야 2006년의 성공 사례들을 보다 많은 영화들에게 확대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의 시장 연착륙을 위한 필요조건들 1
 : 보다 다양한 상영 공간

오늘 처음 들으시는 분이 혹시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의 시장 연착륙을 위해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이 영화들을 상영할 보다 다양한 공간(영화관 등)과 기회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영화 스크린이 1800개나 된다는데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 내야한다는 것이 무슨 소리인가 의아해 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1800개라는 스크린 수 때문에 영화관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텐데요. 사실 스크린 수는 영화관의 수와는 다른 것입니다. 과거보다 스크린 수는 늘었지만, 영화관 수는 줄었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표현입니다. 과거보다 늘어난 스크린 수와 줄어든 영화관 수는 하나의 영화관에 많은 스크린이 있는 멀티플렉스가 늘어났다는 말이자, 과거 대표적인 영화관 형태였던 단관 극장들이 대거 문을 닫았다는 말입니다. 흔한 표현으로 멀티플렉스가 대한민국 영화 상영환경의 주류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천영세 의원의 법안처럼 1800개나 되는 멀티플렉스 내에 일정한 수만큼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가 상영될 수 있는 스크린을 확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2006년 저예산/독립영화의 성공 뒤에는 CGV 인디영화관이 존재했고, 이를 미뤄보건데 멀티플렉스 스크린은 새로운 관객들을 만들어내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CGV 인디영화관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 최근에는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도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는 특화된 기획이나 스크린을 앞 다투어 내놓고 있습니다. 아직 전국 10개 스크린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멀티플렉스 내에 일정한 수의 스크린을 확보한다면, 상영할 공간과 기회를 갖지 못한 영화들에게 일정하게 기회가 열리겠지요.

하지만, 멀티플렉스 스크린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진 못합니다. 그것은 멀티플렉스라는 극장의 특성 때문입니다. 멀티플렉스는 애초부터 ‘유연화된 상영환경’을 위해 고안된 영화관입니다. 여기서 말한 ‘유연화된 상영환경/상영의 유연성 확대’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차상영, 조기 종영 등은 바로 상영환경이 유연화 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단관 극장이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유연화된 상영은 멀티플렉스에게는 보다 강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저예산/독립영화의 경우 유연화된 상영보다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상영이 보다 적합하기 때문에 멀티플렉스 이외의 영화 상영 공간이 다양하게, 더 많이 필요합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저예산/독립영화의 상영에 최적회된 혹은 특성화된 상영 공간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의 시장 연착륙을 위한 필요조건들 2
 : 전문화된 배급/마케팅 인력

상영공간이 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습니다. 영화가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고, 이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급하고, 관객들에게 소개할 주체/인력들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예산/독립영화의 배급과 마케팅은 주류 영화산업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고 합니다. 당연히 달라야 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 주류 영화의 배급과 마케팅 방식은 시쳇말로 물량공세였습니다. 저예산/독립영화 몇 편의 제작비에 달하는 비용을 투입하며, 영화를 알리고 공급합니다. 당연히 저예산/독립영화는 이 방법을 따라할 수 없습니다. 제작비 두 배 이상의 비용을 들여도 별로 티가 나지 않을 테니까요. (물론 투입할 돈도 없겠지만요) 다른 방식의 배급과 마케팅이 필요할 텐데, 이런 다른 방식의 배급과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인력이 그다지 흔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독립영화 배급사에서 한분이 나와 계시지만, 사실 한국에 전문적인 저예산/독립영화의 배급사는 매우 귀합니다. 제작되는 편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입니다. 게다가 풍부한 경험이 쌓여있는 사람은 정말 소수에 불과합니다.

영화를 만들어서 공급하고 알리려면 이런 인력들이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할 텐데, 이런 구조를 만들어내진 못했습니다. 앞으로 만들어가야겠지요. 하지만 문제는 이런 인력들조차 쉽게, 지원 없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허약한 구조라는 것입니다. 다행히 공공적인 마케팅 지원 사업이 있어, 최소한이나마 지원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저예산/독립영화의 안정적인 배급을 위해서는 배급 주체를 보다 직접적으로 지원해야할 필요도 있습니다.

배급 주체를 직접적으로 지원해야할 이유는 주류영화와는 다른 배급과 마케팅을 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최근 1~2년간 매체들을 통해 거대 배급사, 거대 메이저, 수직계열화의 문제 등에 대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과거보다 지금은 배급의 역할이 더욱 중요합니다. 배급은 단순히 영화를 소매업에게 연결시켜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역할은 영화의 성공적인 자금조달 등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배급은 규모와 라인업의 싸움입니다. 영화 한 편, 한 편의 배급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집단화된 배급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배급할 영화의 규모, 마케팅에 투입할 예산의 규모도 중요하지만 한 편의 영화보다는 보다 많은 수의 영화도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수의 영화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 때 배급 주체는 상영 주체에 대해 상당한 교섭력을 가질 수 있으며, 배급에서 발생하는 각종 비용과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교섭력을 가진, 차별화된 배급과 마케팅의 전문성을 가진 주체들이 있어야 배급이 활성화되고, 덩달아 상영도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주체들은 보다 독립적인 주체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존 메이저 배급사가 저예산/독립영화의 배급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후회하지 않아>와 <사이에서>를 배급한 CJ엔터테인먼트 같은 저예산/독립영화에 관심을 가진 메이저 배급사가 배급을 하면 보다 힘 있게 배급될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워너인디펜던트, 폭스서치라이트, 소니클래식스 같은 메이저의 인디배급 레이블을 통해 배급되고 있으므로 한국에서도 ‘CJ-인디펜던트’, ‘인디-쇼박스’, ‘롯데 클래식-시네마’ 같은 메이저 배급사의 인디펜던트 레이블을 만들어서 저예산/독립영화 배급을 확대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메이저 배급사의 경우, 정말 다양한 영화를 배급하기가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이미 미국에서 메이저 배급사가 인디펜던트 배급 레이블을 인수 합병한 이후 반사회적으로 보이는 영화의 배급을 거절한 사례는 많이 있습니다. 메이저 배급사의 인디펜던트 레이블이 다루는 영화의 성격은 제한될 수밖에 없고, 메이저 이외의 배급 주체가 없다면, 메이저 배급사가 선택하지 않는 영화들은 배급의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면, 메이저 배급사의 인디펜던트 레이블이 선택할 것 같은 영화만 만드는 왜곡된 제작 경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보다 다양한 영화의 배급과 상영을 위해서는 독립적인 저예산/독립영화의 배급 주체를 다양하게 만들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의 시장 연착륙을 위한 필요조건들 3
 : 영화 자체의 경쟁력

그리고 관객들을 끌어올 수 있는, 주류 영화들의 경쟁에서 차별화되어 경쟁할 수 있는 영화들을 만들어야 하겠지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처럼 보여 일단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경쟁력 있는 영화라고 해서 무조건 관객들에게 소구가 분명한 콘셉트의 영화만을 강조해서는 곤란하겠지요.


그렇다면,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의 배급과 상영은 활성화될까?
 : 2006년 이후의 상황

다양한 상영 공간, 전문화되고 독립된 배급/마케팅 주체, 그리고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춘 영화만 준비가 되면,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 배급은 활성화되고,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뭐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2006년 이후 변화된 영화 환경은 이런 조건들을 일부 갖춘다고 해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 배급과 상영에는 한국 주류영화 외의 강력한 경쟁자가 있습니다. 이른바 외국산 예술영화와 인디영화라고 부르는 영화들입니다. 각종 국제영화제의 수상작들, 외국의 유명한 감독들의 신작들, 그리고 소위 일본 인디영화라고 부르는 영화들이 바로 한국산 저예산영화/독립영화가 시장을 두고 경쟁해야할 대상들입니다.

‘아니, 왜 경쟁을 해야 해? 공생을 해야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역시 계시겠지요. 맞습니다. 경쟁보다는 공생을 해야겠지요. 공생이 아니라 서로 상생을 해야겠지요.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 게다가 신자유주의 아래의 시장 상황, 그리고 저예산/독립영화의 배급, 상영 구조가 구축되어 있지 못한 상황에서는 상생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먼저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는 외국산 예술영화, 인디영화에 비해 경쟁력이 매우 낮습니다. 흔히 일본 인디영화라고 부르는 영화들의 제작비는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의 제작비보다 높습니다. 일본의 인디영화는 한국의 독립영화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영화입니다. 일본에서 인디펜던트는 도호, 도에이, 쇼치쿠 같은 메이저 영화사가 제작하지 않는 영화들을 통칭해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한국의 독립영화 정도의 영화라면 자주영화라고 부릅니다. (물론 자주영화도 영역하면 인디펜던트 시네마이긴 합니다.) 일본 인디영화의 제작비는 (정확한 통계치는 모르겠습니다만) 최소 1~2억 엔을 상회합니다. 한국에 수입되는 인디영화라 부르는 영화들의 제작비는 2억 엔을 초과할 것이라고 추측합니다만, 1억 엔이라고 해도 원화로 환산하면, 7억8천만 원이 넘습니다. 뭐 물론 물가도 계산을 해봐야겠습니다만, 몇 천만 원도 어렵게 마련하는 한국산 독립영화와 5억 원을 넘기지 못하는 한국산 저예산영화와 비교하면 매우 큰 예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미국 인디영화도 마찬가지지요. 500만 달러 정도의 제작비를 들인 인디영화라고 하면, 46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들어간 셈입니다. 뭐 한국 주류영화의 제작비보다 많은 것이죠.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는 바로 이런 영화들이랑 같은 시장을 두고 경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입되는 외국영화들 중 호락호락한 영화도 있겠지만, 성공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감독 등이 쟁쟁한 영화들입니다. 같은 인디펜던트라고 해도 짐 자무시 감독과 안슬기 감독은 매우 다르지요.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의 한국 시장에서의 경쟁자는 바로 이런 영화들입니다. 이런 영화들이 최대 2억 원, 최소 1천만 원을 주고 수입되어 들어옵니다.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보다 월등한 가격 경쟁력을 자랑하는 영화들이지요.

2006년부터 이런 외국산 예술영화와 인디영화의 수입이 보다 확대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일본 영화의 경우 예년에 비해 몇 배는 될 만큼 수입이 되고 있고, 외국산 예술영화의 경우도 수입이 늘고 있습니다.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의 제작편수는 증가하는데, 별로 늘어나지 않는 상영관을 두고 늘어난 외국산 예술영화/인디영화와 상영관을 확보하기 위해, 상영 기간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해야하는 것입니다.

사실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경쟁이기도 합니다. 한국산 주류영화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든, 유럽산, 일본산 블록버스터든 간에는 명분싸움이라도 하겠지만, 외국산 예술영화나 인디영화랑 시장을 두고 경쟁한다면, 그런 명분을 내세우기가 민망해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연대를 해야겠지만, 상생을 해야겠지만 제한된 기회와 재화는 자연스레 경쟁을 유발합니다. 그나마 스크린쿼터제가 146일이 있었던 시절이라면, 제도적으로 일정한 상영 기회가 보장될 수 있을 텐데, 한미FTA 협상을 위해 이마저도 줄어들어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는 든든한 제도적 장치의 혜택도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어떻게 극복해 낼 것인가? 2006년 이후 변화된 상영 제도의 문제들을 더불어 고민해야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의 배급, 상영 활성화를 위한 대안이 보다 제대로 토론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며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의 배급 활성화를 위해서는 어쩌면 영화관 이외의 다른 배급 창구를 시급하게 개발하여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나마도 이미 죽어버린 DVD 시장도 아쉽고, 저예산/독립영화를 외면하는 지상파 방송, 케이블/위성 방송도 야속해 지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 비극장, DVD, 온라인, 지상파 방송, 케이블/위성 방송, 그리고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뉴미디어와 관련된 고민들까지 함께 해야만, 한국산 저예산/독립영화의 배급 활성화에 대한 고민이 보다 진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후에는 상영 시장에만 얽매이지 않는 저예산/독립영화의 배급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토론하기를 기대합니다.


제8회 전주국제영화제 인더스트리 컨퍼런스 오픈 토크 : 한국 저예산/독립영화의 배급과 개봉

매년 다양한 지원 제도 등에 의해 많은 저예산/독립영화들이 제작되지만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는 영화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이런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2006년 한 해 동안 <내 청춘에게 고함>(2006), <사이에서>(2006), <비상〉 (2006), <후회하지 않아>(2006), <여름이 가기 전에>(2005), <포도나무를 베어라>(2006) 등이 개봉되어 관객과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오픈 토크에서는 이 영화들의 흥행성적과 마케팅 전략을 통해 한국 저예산/독립영화 시장의 현재를 살펴보고 더 많은 저예산/독립영화가 극장 개봉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일시 2007.5.1(화) 16:00
장소 메가박스8관
참가 곽용수(인디스토리 대표), 김보연(영화진흥위원회 국내진흥2팀 아트플러스 담당), 민병훈(감독),
       원승환(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조홍석(프로그램팀 인디영화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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