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독립영화, 사회적 경제에 접근하자!

독립영화 2013. 11. 12. 11:29

한국영화에 있어 시장경제의 실패는 분명해졌다. 2012년 이래 각종 영화산업의 통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이 ‘산업적 르네상스’의 이면에는 흉흉한 이야기가 난무하다. 국산영화시장은 상위 3개의 사업자가 시장의 75%를, 여기에 4위 사업자를 더하면 시장의 90%를 점유하는 독점적 시장이 되어버렸다. 외국영화를 포함한 전체 영화시장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국산영화시장을 지배하는 메이저 4사와 할리우드 직배사 4사만의 시장이 되어버렸다. 이런 시장 질서는 수직계열화한 2개의 대기업을 포함한 3개의 상영 사업자가 전체 스크린의 90%를 점유하는 과점 체계에 기반하고 있어, 공정경쟁 시장으로의 변화는 요원해 보인다. 상황이 이러하니 성장의 열매는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다. 상대적 약자인 제작사와 후반작업사들은 물론이고 절대적 약자인 스태프나, 단역 연기자들은 정상적인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과점적 시장 질서가 구축한 진입장벽 때문에 마이너 배급사나 독립영화 배급사들의 영화는 시장의 구석으로 내몰리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집계하는 이른바 ‘다양성영화’ 시장의 영화들은 대부분 전체 2% 이내의 스크린을 두고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는 중이다. 상영 스크린, 회차, 좌석수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시장경제만 실패한 것이 아니다. 영화발전기금 등으로 운용되는 국가의 공공경제 역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영화발전기금이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지와 재분배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반복되고 있다. 산업의 기록적인 성장 이면에는 앞서 언급한 문제들 외에 영화 향유권의 차별 등 여러 문제가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공공경제는 이를 제대로 제어하거나 보완하지 못했다. 


시장경제가 실패하고 공공경제가 제 기능을 못하는 지금, 독립영화 진영은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당연히 시장경제가 공정해지고 공공경제가 제 역할을 하도록 요구하는 관철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또 다른 대안을 상상하고 구축해야 한다. 세상엔 시장경제나 공공경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과 국가가 책임지지 못해온 영역을 자발적으로 구축해온 경제가 있다. 바로 ‘사회적 경제’다. 한국 독립영화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는 바로 이 사회적 경제에 대한 고민과 접근이 필요하다. 


사회적 경제를 짧게 설명하면 ‘시장경제의 이윤 극대화 논리를 벗어나 개인들 간의 자유로운 공동체가 연대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경제’라고 할 수 있다. 시장경제가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며 상호작용의 기재는 경쟁이고, 그 목표는 효율성이라고 파악하고, 공공경제가 공공성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평등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사회적 경제는 인간의 상호성에 주목하며 인간의 상호작용은 공정성에 기반한 신뢰와 협동으로 파악하며 연대를 목표로 한다. 최근 많이 언급되는 협동조합은 이 사회적 경제의 대표적인 형태다.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번지고 있는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은 시장경제의 냉혹함과 공공경제의 불완전함을 스스로 함께, 극복하려는 것이다.


독립영화의 사회적 경제에 대한 접근은 어떤 방식이어야 할까?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설명되기 때문에 어렵다고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앞서 설명했듯 사회적 경제는 인간의 상호성, 더 쉽게 말하면 협동에 기반한다. 협동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은 위험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먹고 살기 위해서도 협동했다. 


한국 독립영화도 마찬가지다. 과거 한국 독립영화는 협동과 공동체의 시대였다. 90년대 대표적인 독립영화단체인 ‘푸른영상’, ‘서울영상집단’, ‘영화제작소 청년’, ‘젊은영화’ 등은 모두 영화를 만들기 위한 제작자들의 공동체였다. 전통적인 영화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대의 영화를 만들거나 기존의 영화가 다루지 않는 주제와 소재를 다룬 영화들을 만들기 위해 모여서 협동했다. 독립영화의 사회적 경제에 대한 접근은 바로 이 협동의 정신, 공동체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 지난 협동의 역사가 영화 제작을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 협동은 제작 뿐 아니라 제작된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이는 유통의 과정까지 함께 고민하고 실행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독립영화 제작을 보다 원활하게 하고, 보다 많은 관객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필요와 염원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합하여, 제작과 유통 사업체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면 그것이 바로 협동조합이고 사회적 경제의 실현이다. 


1960년대 초, 미국의 ‘진짜’ 독립영화인들은 제작한 영화를 공동으로 배급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조직했다. 바로 ‘영화제작자 협동조합(The Film-Makers' Cooperative)’이다. 이 협동조합엔 900명에 가까운 조합원이 참여하고 있고, 5천 편이 넘는 영화를 배급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하는 ‘캐년 시네마(Canyon Cinema)’도 협동조합으로 설립되어 3천5백 편 이상의 독립영화를 배급하고 있다. 미국 독립영화 배급의 역사는 협동과 협동조합의 역사이기도 하다. 


협동조합 방식의 영화제작과 배급은 한국 독립영화에서도 이미 시도된 바 있다. 1991년 결성된 다큐멘터리 제작집단 ‘푸른영상’은 협동조합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 결성된 조직이기 때문에 협동조합이라고 불리지 않았지만, 협동조합으로 봐도 무방하다. ‘푸른영상’엔 제작자 외에 ‘푸른회원’이라는 회원제도가 있다. 1년에 10만원의 회비를 내면 ‘푸른회원’이 될 수 있는데, 푸른 회원이 되면 푸른영상이 만든 모든 작품을 받아볼 수 있으며, 경조사 및 단체 행사의 촬영을 저렴한 가격으로 받을 수 있다. 요즘 협동조합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생산자 조합원과 소비자 조합원 등이 함께 하는 ‘다중이해관계자 협동조합’인 셈이다. 


2000년대 이래 한국 독립영화는 디지털 미디어의 발전 등으로 인해 집단 제작이 사라지고 개인 제작으로 변해왔다. 비슷한 시기 개인 제작자 간 경쟁도 격화되었다. 제작 지원도 영화제에서의 상영도 영화의 개봉도 모두 경쟁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독립영화의 협동은 퇴색하고 있다. 협동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 지금 독립영화에게 필요한 과제 중 하나다.


NOW (201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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