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블랙박스] ‘다양성’이라는 획일적 명명 : 적절한 영화진흥정책 위해 용어 재검토가 필요하다

영화정책 2013. 12. 2. 11:30

‘다양성영화’란 용어가 있다. 영화인에게도 그리 익숙하지 않아 해설이 필요한 이 용어는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제안한 것이다. 대충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다큐멘터리영화를 대체해서 부르는 것으로 알려진 이 용어는 영화진흥정책 내에 ‘다양성’이란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제작·유통·비평·정책 분야 전반에서 전혀 사용되지 않았던 생경한 용어라 도입시기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지원, 마케팅 및 유통 지원 등 여러 영화진흥사업의 용어로 사용되어왔다. 


2007년 10월 CGV가 기존 ‘인디영화관’사업을 ‘다양성영화 전문 브랜드 무비꼴라쥬’라는 이름으로 런칭한 이후 민간에서도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경기도 등 지자체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다양성영화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정책 용어로서의 포괄하는 영화의 범위가 너무 넓은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영진위의 다양성영화의 선정 기준은 ‘예술영화 인정심사에서 인정한 작품’과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단편영화, 실험영화 등 시장 점유율 1% 이내인 영화형식의 작품, 직전 3개년 평균 기준 서울지역 시장점유율 1% 이내인 국가의 작품, 영진위의 제작지원·배급지원 작품, 당해 연도 1% 미만의 스크린에서 개봉된 한국영화’다. 


복잡해 보이지만 정리하면, ‘주류가 아닌 나머지 영화’를 통칭하는 것이 바로 다양성영화다. 무비꼴라쥬 등이 쓰는 다양성영화의 의미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양성영화는 그저 ‘비주류영화’를 ‘다양성’이라는 개념으로 재포장한 것일 뿐이다.


다양성영화라는 범주 안에 모든 비주류영화 범주를 우겨넣다보니 문제가 없을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마구잡이로 묶어놓은 결과 서로 다른 영화 간 다양성이 지워져버리는 것이다. 본디 다양성이란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며, 문화 다양성이란 문화가 규격화되고 단일화되는 것에 대한 저항이다. 하지만 다양성영화라는 용어는 이 차이를 간단히 지워버리고 서로 다른 비주류영화들을 단일화시켜 버린다. 


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 등 장르적 차이가 지워지는 것은 기본이고 적게는 몇 백만 원, 많게는 1~2억 원 내외로 제작된 ‘한국 독립영화’와 수십억 원 이상, 많게는 수백억 원으로 제작되는 ‘외국 (예술)영화’ 간 생산방식의 차이 등도 간단히 지워진다. 용어 자체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쓰이다 보니 거대 지상파 방송사가 만든 TV다큐멘터리의 ‘극장판’이나 주류 자본이 틈새시장을 노리고 제작한 영화도 다양성영화로 분류된다. 


적절한 영화진흥정책을 위해서는 이 용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씨네21 932호 (201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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