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 문화국가 실현을 위한 지역 영화 진흥정책, 부산이 그 중심이 되어야 한다

영화정책 2012. 12. 5. 13:05

문화국가 실현을 위한 지역 영화 진흥정책, 부산이 그 중심이 되어야 한다


참여정부 시절, 지역 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이 국가운영 의제가 되면서 문화예술 분야의 균형 발전도 국가정책 의제가 되었다. 국가발전전략이 서울 중심으로 진행되다보니, 많은 분야에서 서울은 포화상태가 되고 지역은 고사되는 현상이 국가발전의 문제로 지적되었는데, 문화예술 분야도 마찬가지라는 ‘정책적’ 반성이 있었다. 2003년 12월, 문화관광부는 지방분권TF를 통해 지역문화진흥 정책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 순회 토론회가 개최되며 ‘지역문화진흥법’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등장했다. 이 법의 취지는 ‘지역의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제반 사업과 활동을 지원하고 지역의 문화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지역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지역 간 문화격차가 해소되면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문화를 통한 지역 발전과 국가 균형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2006년 5월, 이광철 의원 등의 의원발의 형태로 ‘지역문화진흥법안’은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17대 회기 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고 회기가 끝나자 자동 폐기됐다. 18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되었으나 이번엔 문방위 계류 상태에서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2번이나 자동 폐기의 운명을 맞았던 ‘지역문화진흥법안’은 19대 국회가 개원한 2012년, 이병석 의원 등과 도종환 의원 등이 각각 발의한 2개의 법안으로 다시 제출되었다. 3번째 제정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화예술계의 공통된 입장이다.


지역문화진흥법안 입법 과정에 대해 시시콜콜 언급한 것은 이 법안이 가진 문제의식이 영화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역시 서울이 중심이다. 영화 제작 산업의 기반은 물론이고 다양한 영화 문화 체험도 서울 중심이다. 지역에서는 부산이 그나마 산업과 문화의 인프라가 갖춰진 경우다. 부산의 경우 96년 국제영화제가 개최된 이후 부산영상위원회와 시네마테크 부산이 설립되고 시청자미디어센터와 작년 영화의 전당까지 설립되며 영화 산업과 문화의 인프라를 어느 정도 다졌지만, 이것을 갖추는 데는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영화도시라는 부산조차 인프라를 갖추는 게 어려운 상황이니, 다른 지역의 상황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2012년 현재 특별·광역시를 제외한 기초 자치단체 60%엔 영화관이 없다. 1,200만 명 이상이 관람한 영화가 올해도 등장했지만, 영화관이 없는 지역 사람들에게 이 영화의 존재는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특별·광역시가 아니면 독립·예술영화를 영화관에서 볼 방법도 없다. 특별·광역시를 제외한 기초 자치단체 중 예술영화관이 있는 곳은 6곳, 울산은 광역시지만 예술영화관이 없다. 독립영화전용관은 오직 서울에만 있다. 이렇게 영화 관람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서 지역 간 큰 격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의 영화진흥정책은 영화관에서의 관람 기회를 갖지 못한 국민들에게 관심이 없다. 영화진흥정책의 목적 중 하나는 ‘국민이 문화생활 향상’인데, 과연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문화예술 전반에서 지역문화진흥이 논의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영화진흥을 책임지는 기관과 정책에서 관련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2011년 10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발표한 ‘영화진흥사업 중장기 계획’(이하 중장기 계획)에도 관련 정책은 없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부산으로 이전을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지역은 관심 밖이다. 이전 목적인 국가균형발전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려면 지역에 대한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야할 것 같은데, 현실은 다르다. 물론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산 이전에 대한 영진위의 대응은 국가균형발전이나 지역영화 진흥과는 하등 관련이 없다.


‘중장기 계획’을 보면 영진위는 부산 이전을 향후 사업을 방해하는 문제나 한계로만 인식한다. “부산 이전으로 지역적 한계가 발생함에 따라 수도권에 밀집된 영화계와의 네트워크 단절 및 영화진흥사업 운영에 차질 예상”된다고 예측한다. 그래서 영화인들과 “대면 접촉할 수 있도록 연락사무소를 서울에 개설”해야 하고, “물리적 공간 제약과 무관한 사업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는 것을 계획으로 내놓았다. 말하자면 이전하라고 하니 하겠지만, 지금까지의 역할과 사업을 수정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지역 이전을 앞둔 상황에도 진흥기관의 입장이 저러하니, 지금껏 지역 영화의 진흥은 지역의 자구적 노력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역영화진흥 사업은 대부분 지역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추진 되었다.


현재 지역영화진흥과 관련된 흐름은 크게 네 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영화·영상물 촬영에 필요한 허가와 행정지원,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는 ‘영상위원회’ 설립과 운영, 둘째는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맞춰 미디어 리터러시를 통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영상미디어센터’의 설립과 운영, 셋째는 영화관이 없어 영화 향유를 하지 못하는 지역민에게 영화 관람의 기회를 제공하는 ‘지역 영화관’ 설립 혹은 ‘영화제’ 개최, 넷째는 지역 고유의 ‘영화 제작 지원’이다. 각 사업들의 실행은 지역자치단체의 정책적 판단 여부와 민간 활동 의지에 따라 선택되어 집행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몇 가지 사업이 연계하여 집행되기도 한다.


각 사업들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런 사업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역영화진흥이라는 과제가 그 자체로 완결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사업들은 일부 지역자치단체들을 중심으로 집행되고 있으며, 여전히 많은 지역자치단체의 문화예술 사업 중 영화 관련 사업은 비중은 크지 않다. 지역문화예술로서의 영화의 역할이 명확하게 정리되고 공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이상적인 지역영화진흥의 상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하다. 이미 관련 사업들이 진행되는 지역에서도 각 사업들이 어떤 역할을 나눠가지며 지역 발전과 문화의 활성화에 기여할지를 정리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지역영화진흥 사업들이 어떻게 지역 경제에 기여하고 지역 고유의 문화를 창조적으로 승계·발전시킬 수 있을지, 그리고 시민들의 참여를 활발하게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하고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영화 문화의 불균형의 원인을 분명하게 밝히고 대책을 마련하여, 영화 문화의 국가적 균형적 발전도 도모해 내야 한다. 


그렇다면 지역영화진흥 정책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영진위 등 관련 기관의 지역 이전은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전 이후 영화정책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기반 해야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지역영화진흥이다.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다. 영진위의 역할도 있겠지만, 이미 지역영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지역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지역 정책이기 때문이다. 이미 직접 사업을 집행한 경험을 기반으로, 지역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사업’과 ‘선택적으로 필요한 사업’을 구분하고, 적절한 지원 체계와 예산 계획들을 생산해야 한다. 영진위는 이런 지역의 제안들이 확대되고 발전될 수 있도록 지원하면 된다. 이 과정들을 통해 지역영화진흥정책들이 하나둘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지역영화의 맏형인 부산의 역할이 중요하다. 가장 먼저 지역영화진흥 사업을 펼친 곳이기 때문이다. 과연 부산은 지역영화진흥이라는 과제를 이끌어나갈 의지와 계획이 있는가? 한국의 다른 지역들 뿐 아니라 아시아의, 아니 세계의 다른 지역들이 끊임없이 참고하고 배워갈 그런 것 말이다. 이제껏 영화도시 부산의 비전은 다른 관점으로 영화를 사고하고, 실행하는 것으로 성취되어 왔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화국가 실현을 위한 과제인 지역문화진흥, 그 중에서도 지역영화진흥의 기반을 만드는 일 역시 부산이 담당해야할 중요한 과제다.


[영화 부산] Vol.2 (201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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