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 다시, 영화협동조합을 이야기한다
협동조합 2013. 5. 15. 10:35지난 4월 6일, 경기도 고양에서 ‘영화나눔 협동조합’이 발기인 총회를 열고 출범했다. 2012년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이래 영화와 관련되어 출범한 첫 번째 협동조합이다. 이외에도 서울에서 ‘청년영화인 공정영화 협동조합 <모두를 위한 극장>’이 최근 설립 신고를 마치고 등기가 완료 되는대로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농업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정도만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영화 협동조합은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전에도 영화 협동조합은 존재했다. 단지 지금처럼 누구나 만들 수는 없었다.
최초의 영화 협동조합, 실패의 역사
건국 이래 최초의 영화 협동조합은 1971년 2월 13일 설립된 ‘영화진흥조합’이다. 민간 영화업자들의 협의체인 한국영화제작자협회, 한국영화수출입자협회, 한국영화인협회, 전국극장연합회 등이 참여하여 설립된 영화진흥조합은 1970년 8월 공포된 제3차 개정 영화법에 따라 설립되었다. 개정영화법 제19조 2항은 법에 따라 협회를 설립한 자들은 ‘국산영화의 진흥과 상호의 공동 이익 및 영화산업의 육성, 금융 등’을 위해 영화진흥조합을 설립하도록 규정했다. 이렇게 설립된 영화진흥조합은 오래 가지 못했다. 민간의 단일된 필요와 요구에 의해 설립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법에 따라 조합을 만들기는 하였지만, 조합을 구성한 단체들의 입장은 서로 달랐다. 이런 갈등은 제작비 융자 및 우수영화 보상 사업 등에서 폭발했다. 설립 과정에서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영화진흥조합이 실패로 드러나자 영화인들은 민간자치의 모양새만 띤 영화진흥기구가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정책을 요구했다. 제4차 개정영화법에서 관주도의 영화진흥기구인 ‘영화진흥공사’가 출범하면서 1973년 영화진흥조합은 청산되었다.
이후에도 영화 협동조합은 존재했다. 1982년 종합영화촬영소의 건립을 목표로 ‘한국종합촬영협동조합’이 발족되기도 하였으며, 1983년엔 모든 영화제작사 20개사가 참여한 ‘한국영화제작협동조합’이 문화공보부로부터 인가를 받고 설립되었다. 1983년, 중소기업협동조합 설립 규정이 완화되고 소조합 결성을 허용한 관계법의 시행규칙이 개정된 것이 결성이 계기였다. 1980년대 영화 협동조합은 사업자 협동조합이었다.
‘영화나눔 협동조합’ 설립 등 최근의 영화 협동조합 설립 움직임은 사업자 협동조합만이 아닌 다양한 성격의 협동조합 설립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영화나눔 협동조합’의 경우 소비자 협동조합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는데, 영화의 배급과 상영 뿐 아니라 관객과의 대화, 시민들을 위한 영화 아카데미, 대중영화 평론지 성격의 <영화 컨슈머리포트> 발간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조합원 수가 안정적으로 확보 되는대로 영화 제작에도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영화 소비자 협동조합의 사례
‘영화나눔 협동조합’과 같지는 않지만, 이와 비슷한 영화소비자 협동조합의 사례를 외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화 부산> Vol.3에서 잠시 소개한 바 있는 미국의 ‘모리스 극장’과 ‘아트시어터’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네소타 주 스티븐슨 카운티의 모리스 마을에는 1940년에 설립된 ‘모리스 영화관’이 있는데 2010년 협동조합으로 전환해 운영되고 있으며, 일리노이 주 샴페인 카운티에 있는 100년 전통의 ‘아트시어터’가 2012년 미국 최초의 예술영화관 협동조합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가까운 일본에도 영화생활 협동조합이 있다. 1996년 설립된 ‘미야코 영화생활협동조합’은 일본 유일의 협동조합 영화관으로 각 85석과 62석 규모의 영화관 ‘시네마린’을 운영하고 있다. 2013년 현재 조합원은 17,670명, 미야코시 전체 인구의 30%가 조합원이다. 미야코 영화생협은 협동조합답게 영화관만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100회가 넘는 순회 상영회를 통해 지진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지역 공동체를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
모리스 영화관, 아트시어터, 시네마린 등은 영화를 지역 주민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염원과 영화를 보고자 하는 지역민의 요구가 결합하며 설립된 경우다. 이런 영화소비자 협동조합은 영화문화 향유의 불균형이 심화를 해결할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당장에 영화관을 만들면 좋겠지만, 영화관 건설을 장기적 목표로 하여 조합원들을 모으고 정기적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소비자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실제 외국에는 영화관이 없는 지역에서 필름 소사이어티 활동을 통해 정기적으로 영화를 상영하고 있기도 하다.
영화 생산자 협동조합의 사례
소비자 협동조합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두 개의 주목할 만한 영화인 협동조합이 설립됐다. THE FILM-MAKER’S COOPERATIVE, Canyon Cinema다. 각각 동부와 서부를 대표하는 이 영화인 협동조합들은 독립영화의 제작과 홍보와 배급을 목적으로 한 영화인들의 자조적 단체였다. 미국 독립영화인들은 협동조합을 통해 독자적인 영화 제작-배급 구조를 구현했다. 이처럼 지역 독립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위한 협동조합도 가능하다.
생산자 뿐 아니라 소비자도 참여하는 협동조합도 가능하다. 1991년 설립된 기록영화제작집단 ‘푸른영상’은 협동조합은 아니지만 협동조합에 준하는 회원 제도를 가지고 있다. ‘푸른회원’이라는 방식을 통해 소비자는 푸른영상의 작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고, 푸른영상은 이를 기반으로 제작활동을 유지할 수 있었다. 창작자는 제작조합원으로 관객은 소비조합원으로 참여하며 자본이 외면하는 영화들을 제작ㆍ배급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영화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하는 협동조합으로 ‘영상미디어센터’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영상미디어센터’가 정부 주도로 설립되어 있지만 캐나다의 경우는 지역 영화인들의 자조적 조직이 이런 역할을 한다. Atlantic Filmmakers’ Cooperative 등 캐나다의 영화 협동조합은 지역에서의 영화 제작은 물론, 재정 지원 및 장비와 시설 임대, 제작 워크숍,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운영, 영화 상영 등 영화 제작과 교육을 위한 센터로 기능하고 있다.
배우나 스태프들의 협동조합도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배우나 스태프들은 회사나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활동하거나 개인적으로 활동하는데, 협동조합 형태로 조직화해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배우와 매니저가 공동으로 조직한 ‘도쿄배우생활협동조합’(약칭 배협)이 1960년 5월 설립되어 활동 중이다. 배협은 출연사업부를 통해 소속배우의 매니지먼트를 하고, 제작사업부를 통해 프로그램 제작과 작품 캐스팅을 진행하며, 공제부를 통해 조합원들의 건강 및 경조사를 관리한다. 산하에 ‘극단 배협’을 창단하여 전국적인 규모의 공연 활동도 진행하고 있으며, ‘배협연극연구소’, ‘Voice Actor's Studio’ 등을 통해 배우와 성우 양성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배우협동조합, 스태프협동조합을 설립해 조합원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재교육 등 조합원의 이익에 부합하는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아울러 각종 보험 혜택, 경조사 관리 등을 함께 도모할 수 있겠다. 이밖에 직접 제작에 참여하거나 새로운 인력을 양성하는 활동들도 가능하다.
영화 사업자 협동조합의 사례
과거 한국영화제작협동조합처럼 영화제작사 등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사업자 협동조합도 만들 수 있다. 비영리 법인으로 제작사 등 사업자의 조직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공통된 사업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협동조합 형태의 사업체를 만들 수도 있다.
일본의 독립영화제작사들의 자조 조직인 일본영화제작자협회는 일본의 대표적인 영화단체이자 협동조합이다. 일본독립영화제작자협의회가 전신인 이 협동조합은 1995년 직원 100명 이하 또는 자본금 5천만 엔 이하의 일본 영화 및 비디오 제작 사업자를 조합원으로 하여 발족했다. 2013년 3월까지 조합원은 56개사이고, 일본에서 제작되고 있는 영화의 대부분이 이 협동조합 회원사가 참여한 작품이라고 한다. 주요 사업으로는 영화 상영 사업은 물론, 신도 가네토상의 선정과 시장, 'SARVH상'의 선정과 시상, 영화 제작 기간 중 상해 보험의 공동 가입과 관리, 사적 녹화 저작권 협의회의 참여 및 사적녹화 보상금 분배, 정책 개발, 해외 영화제작사와의 교류 등이 있다.
특히 현재와 같이 시장이 독과점화 되어 있는 상황에서 중소 사업자들이 공통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보다 적절한 대응방안이 될 수 있다. 소규모 사업자의 협동조합은 ‘독과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으므로, 거대 사업자에 대항하는 사업자 결사체로 기능할 수 있다. 지역의 영화사업자들도 지역 내 사업 강화 및 정부 기관과의 원활한 연계를 위해 사업자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겠다.
협동조합으로 할 수 있는 것들, 하지만 잊지말아야할 것
협동조합은 한국 영화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영화문화의 양극화, 시장 독과점, 고용의 불안정성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할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협동조합의 설립이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금물이다. 협동조합을 제대로 설립하고 잘 운영해야 문제 해결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지,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협동조합을 제대로 설립하고, 잘 운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협동조합의 역사가 깊어지면 그 답이 찾아지겠지만, 우선 국제협동조합연맹이 내린 협동조합의 정의에서 답을 유추해보자. 먼저 정부 등 관 주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경제ㆍ사회ㆍ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이 조직이 운영하는 사업체는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어야 한다. 정부가 주도한 영화진흥조합의 실패는 이에 대한 반면교사다.
무엇보다 협동조합은 ‘사업체’라는 점을 잊어서는 곤란하겠다. 협동조합이든 사회적 협동조합이든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은 사업체라는 수단을 경유한다. 사업체란 경제조직을 의미하는 것이며, 명확한 사업 모델이 있어야 한다. 사협동조합은 그저 뜻이 좋아 함께 모인 조직이 아니라, 특정한 사업 모델을 영유하는 조직이다. ‘남들이 다 하니까’ 혹은 ‘어떤 필요가 보이니까’가 아니라 ‘어떤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사업’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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