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의 관객을 바라보며.

독립영화 2009. 3. 13. 17:25

봄인가요? 벌써 3월입니다. 3월의 기억은 또 다른 시작입니다. 아마도 학교란 곳을 10년 정도 아니면 그 이상 다니다보면, 3월이 시작이라고 느껴지기도 할 것 같습니다.

지난달에 이어 또 <워낭소리> 이야기입니다. <워낭소리>를 극장에서 본 관객들이 2백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나라의 인구가 4천8백만 명 정도라고 가정하면, 24명 중 1명은 <워낭소리>를 본 것이 되는 건가요? 1천만 명이 본 영화가 몇 편이나 되고, 상업영화의 경우 2백만 명 이상이 관람한 영화도 꽤 되기 때문에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독립영화를 하는 저에게는 꽤 무시무시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몇 년 전 독립영화축제 인디포럼에서 열린 포럼에서 ‘전체 영화시장의 1퍼센트’를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1년간 한국의 영화관객수가 1억 명이 조금 넘는 것과 비교해 추정하면 2009년 독립영화는 한국 영화 상영 시장의 2% 이상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듯합니다. 한해 개봉한 독립영화의 전체 관객 수를 더해도 상영 시장의 0.5%도 차지하지 못했던 독립영화 진영에겐 1편의 영화가 전체 영화 시장의 2% 이상의 자리를 차지하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둘러싸고 독립영화 내부에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토론되기도 합니다. ‘<워낭소리>가 독립영화냐?’라는 존재론(?)적 질문부터, ‘<워낭소리> 이후 독립영화 배급사들이 상업영화 배급사들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냐?’는 실제론(?)적 질문까지 (활발하진 못하지만) <워낭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이런저런 자리에서 많이 듣게 됩니다. 

현재도 많은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기 때문에 <워낭소리>의 결과가 무엇인지, 독립영화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하겠지만, 지금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워낭소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독립영화의 존재와 그 의미를 알려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한국에도 독립영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분들도 많이 계신 것 같고, 그런 분들 중 또 많은 분들이 다른 독립영화를 찾아보시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당장 인디스페이스의 관객 분들을 봐도 <낮술>을 보러 찾아오시는 많은 젊은 관객 분들, 새로 개봉한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보러 오시는 나이 많으신 관객 분들 중에는 <워낭소리>를 통해 처음 독립영화의 존재를 알고 찾아오시는 새로운 관객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특히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의 경우 50대 이상의 관객 분들이 자주 보이시는 것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간 독립영화하면 젊은 사람들, 그 중에서도 인디펜던트 문화에 관심이 많은 관객들이 주요 관객층이라고 생각하고 홍보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독립영화가 기존의 상업영화가 주지 못하는 것들을 제공해주는, 그래서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에게 모두 매력적인 영화로 재인식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머릿속이 꽤나 복잡해집니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의 한국어 자막 크기가 어르신들 읽기에 적절한 크기인지부터 이렇게 찾아오시는 어르신들께는 독립영화의 상영 홍보를 어떻게 전달해 드려야할 것인지에 까지 예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3월 초 인디스페이스가 있는 중앙시네마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인디스페이스 상영작이었던 <워낭소리>와 <낮술>이 스폰지하우스 2관과 중앙시네마 5관에서 추가 상영이 결정되면서 인디스페이스와 함께 무려 3개 스크린에서 한국 독립영화가 상영됩니다. 상업영화가 부진하기 때문에 독립영화가 약진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상업영화의 부진을 독립영화가 상쇄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비로소 광장에 선 독립영화에게 올 한해는 꽤 중요한 한 해가 될 듯합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 협상에 의해 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가 73일로 줄어든 상황이라 이미 <워낭소리>나 <낮술>로 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를 다 채워가는 극장들이 하반기에도 한국 독립영화가 상영될 수 있도록 기회를 내어 줄까하는 걱정도 한 쪽에는 있습니다만, 이런 불리한 조건들 속에서 어떻게 관객과의 만남을 지속해 갈 것인지 많은 독립영화인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독립영화, 예술영화의 관객은 20대~30대 관객’이라거나 ‘독립영화의 홍보는 비용이 적게 드는 온라인을 통해서’라는 식의 관성을 넘어 어떻게 대중적 접점을 만들어갈 것인지 깊고도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아, 꽃피는 춘삼월인데 너무 심각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나요? 오랜만에 야외에서 광합성도 하시고, 봄과 함께 활기찬 하루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3월 인디스페이스에서는 “아시아 독립영화의 오늘 ACF 쇼케이스2009”와 “2009 인디다큐페스티발” 2개의 영화 축제가 열립니다. 새로운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축제에도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늘 행복하세요.

INDIE SPACE ON PAPER. 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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