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 부산에도 독립영화전용관을!

독립영화 2012. 12. 5. 13:01

부산에도 독립영화전용관을!


부산은 영화에 있어 독특한 도시다. 최초의 국제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된다거나, 최초의 영상위원회인 부산영상위원회가 설립되었다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영화 제작의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영화가 제작되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끊임없이 영화가 제작되고 있다. 산업이라고 부를만한 규모는 아니지만, 꾸준히 영화가 제작된다는 것은 ‘그런가보다’ 정도로 넘겨버릴 일은 아니다. 과문한 탓에 ‘지역 영화’의 의미라거나 ‘부산 영화’의 의의 등을 깊이 있게 논할 수는 없다. 다만 ‘균질화된 대상을 상정한 규격화된 영화’를 주로 양산하는 주류 영화와 거리를 두고 만들어지는 ‘지역 영화’는 다른 스타일과 영화 문법으로 한 나라의 영화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는 점은 지적해야겠다. 특히 영화 문화의 다양성이나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부산 영화’의 존재는 무척 돋보이고, 그만큼이나 소중하다. 


산업 기반이 없었던 까닭에 부산 지역 영화는 독립영화 방식으로 제작되어 왔다. 이런 제작 전통은 1999년 부산독립영화협회 창립의 밑거름이 되었다. 가장 오래된 지역독립영화협회다. 부산독립영화협회는 1999년부터 1년간 부산 영화 제작의 성과를 일별할 수 있는 메이드인부산독립영화제라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단편영화 중심의 영화제였지만 최근에는 장편영화들도 많이 상영된다. 2006년 이후 선보인 장편영화는 30편 가까이 된다. 상당한 규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봉한 영화는 많지 않다. 몇 년 사이 개봉한 부산 독립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다. 상당한 편수가 제작되는데도 배급되는 영화가 적은 까닭은 뭘까? 이미 개봉한 영화들의 관객 수를 두고, 영화가 시장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꼭 그런 걸까? 시장 경쟁력이 배급의 판단의 전부라는 건 경제적 검열을 인정하는 것이 될 뿐이다. 부산 독립영화가 배급되지 못한 것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직접적인 원인은 ‘누구도 이 영화들을 직접 배급하겠다고 나서지 못하기 때문’일 것일지도 모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배급할 영화관도 마땅치 않고, 배급비용 이상의 수익이 나지 않을 것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손을 놓고 있어야할까? 그러면 더 나은 세상이 올까? 그럴리 없다. 무엇이라도 준비를 해야 한다. 말은 간단하지만 실행에 옮기는 건 다른 문제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배급을 위해 필요한 것을 정리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예를 찾아보자. 그 예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부산 독립영화가 처한 고민은 한국 독립영화의 고민이다. 독립영화인들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줄기차게 ‘독립영화전용관’(이하 전용관) 설립을 요구했다. 하나의 스크린에서라도 제대로 상영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요구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필요성엔 공감하나, 시급한 정책은 아니’라 했다. 시네마테크전용관을 만들 테니 거기서 상영하라거나, 저예산영화 상영을 위해 예술영화관을 지원할 테니 거기서 상영하라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영화관을 만들 돈이 없으니 그 공간들을 이용할 밖에. 하지만 기회는 가물에 콩 나듯 돌아올 뿐이었다. 2003~4년까지 매 서른 편 이상의 장편독립영화가 제작되었지만 고작 두세 편만 개봉되었다. 시네마테크나 예술영화관으로는 독립영화 상영과 배급을 안정적으로 할 수 없었다. 전용관은 꼭 필요했다. 전용관은 3기 영진위에서야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예산 및 공간에 대한 이견을 딛고, 2007년 11월 8일 최초의 전용관이 문을 열었다. 인디스페이스다. 드디어 최소한 한 개 스크린에서는 독립영화가 1년 내내 쉬지 않고 상영되는 시대가 열렸다. 상영에 획기적인 진전이 생긴 것이다. 


전용관의 성과는 상영관 확보에서 그치지 않았다. 영화가 있다고 저절로 배급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배급하고 홍보(마케팅)하는 인력/조직이 있어야 한다. 1년에 두세 편 개봉되는 상황에서 전문적인 배급사가 여럿 존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전용관이 생기자 상황이 변했다. 전용관을 매개로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회사들이 생겨났다. 다큐멘터리를 주로 배급하는 ‘시네마달’, 디지털영화 배급을 전문적으로 하는 ‘키노아이 DMC’ 등이다. 여기에 해외 예술영화를 주로 배급했던 ‘마운틴 픽쳐스’, ‘영화사 진진’ 등이 가세했고, ‘KT&G 상상마당’도 독립영화 배급을 시작했다. ‘인디스토리’만 외로이 존재하던 시절을 지나 독립영화 배급이 ‘폭발’했다. 전용관은 배급사 설립의 기반이 되었고, 지금껏 없었던 독립영화 배급-상영 구조가 갖춰지기 시작했다. 이 뿐이 아니다. 개봉을 하기 시작하자 배급에 대한 고민이 더 커졌고, ‘부가시장’에 대한 접근도 더욱 활발해졌다. 인디스페이스는 극장 개봉을 넘어 다른 배급 창구를 개발하는 실험도 전개했다. ‘키노아이 DMC’와 함께 2008년에는 ‘영화관-온라인’을, 2009년에는 ‘영화관-IPTV’에서 동시에 개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런 씨앗들이 독립영화 디지털콘텐츠신디케이션 사업자 ‘인디플러그’ 설립으로 이어졌다. IPTV 동시 개봉과 온라인 다운로드 서비스가 일반화되었다. 하나의 영화관이 생겼을 뿐인데, 변화는 정말 컸다.


다시 부산 독립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배급이 안된다면, 문턱을 최대한 낮춰 배급할 수 있도록 전용관을 만들면 어떨까? 부산 독립영화 배급의 전초기지가 될 영화관말이다. 이미 국도예술관, 아트씨어터 C&C 등의 예술영화관과 CGV 서면 무비꼴라쥬,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아르떼 등 멀티플렉스 예술영화스크린이 있고 게다가 영화의 전당까지 생겼는데, 또 전용관을 만들어야 하나 싶기도 할테다. 하지만 방금 이야기하지 않았나? 시네마테크와 예술영화관은 전용관을 대체할 수 없다. 전용관은 비주류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이 아니라 독립영화 배급의 기지다. 새로 설립할 수 없다면 기존 공간들 중 하나를 전용관으로 바꾸면 된다. 


독립영화를 보는 사람이 많이 않은 지역에서 전용관이 성공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할테다. 맞다. 개관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관객이 좌석을 채우진 않을 것이다. 독립영화 관객 확대는 모든 독립영화인의 과제이자 영화 정책의 과제다. 더 많은 관객 모으려면 무엇보다 더 많이 상영되어야 한다. 더 많은 상영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나의 영화관으로 해결할 수 없다. 특히 지역 전용관의 설립이 중요하다. 독립영화 관객을 분석해보면 대개 서울 관객이 7~80%를 차지한다. 하지만 1만명 이상이 본 영화는 다르다. 지역 관객이 3~40%를 차지한다. 지역 관객이 확대되어야 전체 독립영화 관객이 확대된다는 말이다. 부산이 가진 350만 명의 인구와 꾸준한 지역 영화 제작 역량은 첫 번째 지역 전용관을 가능케 할 최선의 환경이다.


부산 전용관 설립은 부산 독립영화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것이다. 배급을 첨예하게 고민할 단초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관객과 만날 기회를 확대해 창작자들의 '영화'를 고민도 확장시켜 줄 것이다. 그리고 한국 독립영화 관객의 전국적 확대를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한 일인가! 2013년 영진위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을 변경하면 내년에 당장 가능할 수 있다. 머뭇거릴 필요 있나? 당장 시작하자! 



원승환 (사) 독립영화전용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 이사

2010년까지 독립영화 배급지원센터 소장으로 일했다.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을 기획했고, 2007~9년까지 인디스페이스를 직접 운영했다. 독립영화전용관으로 영화시장 안 독립영화 배급 구조를 만드는 일과, 공동체 상영 등으로 영화시장 밖 독립영화 배급 구조를 만드는 일이 주요 관심사였다. 


[영화 부산] Vol.1 (201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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