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 소리’ 성공의 외부 조건

독립영화 2009. 6. 11. 19:18

2009년 독립영화로는 첫 개봉한 <워낭소리>의 관객 반응이 정말 놀랍습니다. 기술 시사 때부터 계획을 잘 세워 소개하면 좋은 반응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독립영화 일을 하며 일주일에 1만 명의 관객이 영화를 보는 일은 아주 가끔 경험한 적이 있지만, 하루에 10만 명 이상이 독립영화를 보는 일을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까지 독립영화는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대부분 극장과 미디어로부터 외면 받아왔기 때문에, <워낭소리>가 아무리 좋은 영화라 하더라도 그 엄청난 장벽을 뛰어넘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워낭소리>는 지금껏 그 어떤 독립영화도 하지 못한 경험을 주고 있습니다.

<워낭소리>에 이렇게 많은 관객들이 호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관객과 공명해낸 영화의 힘을 들 수 있겠습니다.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객과 적극적인 상호 소통을 해냈고, 이는 ‘영화가 좋으면 관객은 찾는다’는 일반적인 통념을 재확인시킨 것이라는 세간의 평가는 여기에 근거합니다. 하지만 정말 관객은 좋은 영화만 있다면 찾아올까요? <워낭소리>의 경험은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독립영화 일을 해온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워낭소리>의 성공은 아주 예외적인 상황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워낭소리>의 기록적인 관객 반응이 상업적인 영화들의 1/10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용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으로 홍보와 마케팅을 진행한 제작사, 배급사의 노력과 관객들의 입소문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홍보의 노력이 관객에게 전달된 데에는 다른 독립영화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다른 매개가 있다는 점이 간과해선 안 됩니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워낭소리>는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TV 영화 프로그램에서 많이 소개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개봉한 대부분의 독립영화는 영화의 질, 영화적 재미와 무관하게 영화 홍보의 중요한 창구인 TV 영화 프로그램으로부터 외면 받았습니다. 지상파 TV가 공공의 자산이고, TV 영화 프로그램이 관객들이 관람할 영화를 선택하는 주요한 매체라면 다양한 영화들을 소개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많은 마케팅 비용을 지불하는 많이 알려진 영화만의 잔치일 뿐이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마케팅 비용이 없어 대중 홍보를 위해 TV의 힘이 간절히 필요한 영화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다행히 <워낭소리>는 1월에 개봉하는 단 두 편의 한국영화 중 한 편이었기 때문에 소개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예년처럼 설을 앞두고 많은 한국영화가 경쟁하는 시절이었다면, <워낭소리>는 좋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에게 알려지지 못해 아쉬운 영화로 남아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소개하면 시청률이 나오지 않고, 몇 개관에서 개봉하지 않는 영화는 소개해 봐야 관객이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는 영화들을 중심으로 소개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워낭소리>의 사례는 독립영화도 관객에게 많이 소개될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많은 관객이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되어 극장을 찾게 되고, 영화관에서 상영하지 않는다면 상영을 요구하게 되고, 이를 통해 강력한 상영 자본의 독과점 구조를 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워낭소리>의 예외적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외부적 조건들이 변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 과거의 모습들이 답습된다면 제 2의 <워낭소리>는 한낮 꿈같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그저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스타가 나오지도 않고, 장르영화도 아니기 때문에 관객이 좋아하지 않으리라는 편견을 가지고 독립영화들을 대한 것은 아니었는지 이 기회에 되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경향신문 200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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