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시장 양극화를 이끄는 두 개의 지렛대, CGV와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 2015. 9. 23. 10:18

한국 영화시장은 해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상영시장은 씨너스가 메가박스를 2011년 합병하고, 2013년 CGV가 프리머스시네마를 합병하면서,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3개 사업자가 시장의 90% 이상을 과점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한국영화의 배급시장은 2008년 설립된 NEW(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가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춘 2010년 이래, CJ E&M·롯데엔터테인먼트·쇼박스·NEW 등 4개사가 시장의 8~90%를 차지하는 형태로 고착되었다. 외국영화를 포함한 전체 영화 배급시장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앞서 언급한 4개의 한국 메이저 배급사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등 직배사가 시장의 90%를 분점하는 형태로 고착되었다. 그사이 SK플래닛, KT싸이더스 등 통신자본과 방송자본인 에스비에스콘텐츠허브 등이 배급시장의 진입을 시도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정리하면 독과점된 상영자본을 중심으로 영화시장이 재편되었으며, 재편의 방향은 소수의 메이저가 시장을 과점하는 것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고착된 시장은 높은 진입장벽을 구축하고 있으며, 다른 자본이 시장에 참여하는 것은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최근 예외적으로 시장 진입에 성공한 사업자는 1위 상영업자인 CGV 뿐이다.


이런 변화는 영화시장의 양극화를 가중시키고 있다.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독립영화 등 비주류 영화사업자들의 사정은 더욱 열악해지는 중이다. 영진위의 2013년 결산기준으로 ‘다양성영화’로 분류되는 영화의 개봉 편수는 342편이었다. 이 중 안정적인 상영기회를 얻은 작품은 몇 편일까. 한국영화산업불공정행위모니터링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전체 스크린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멀티플렉스 3사는 2013년 개봉영화 909편 중 평균 429편(CGV 412편, 롯데 477편, 메가박스 399편)만 상영했다. 전체 개봉 영화의 절반이하(약 47%)만이 멀티플렉스에서 상영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 기회를 얻지 못한 영화들은 바로 시장에서 사라진다. 높은 시장장벽 속에서 비주류영화 배급사들의 미래는 암담하다.


게다가 비주류 영화시장은 급격하게 요동치고 있다. 급변의 주체는 앞서 언급한 1위 상영사업자 CGV다. CGV는 ‘아트하우스’라는 이름의 투자배급 레이블을 만들어 저예산영화의 제작투자·배급과 독립영화의 마케팅투자·배급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1위 상영사업자답게 성공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되는 독립영화에는 안정적인 스크린을 확보하고 통이 큰 마케팅 투자와 배급을 도입했다. 또한 CJ E&M과의 역할 분담을 통해 저예산 영화의 제작 투자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2014년 <한공주>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등의 성공은 독립영화 마케팅 투자·배급의 성과이며, <우아한 거짓말>과 최근 개봉한 <차이나타운> 등은 저예산영화 제작투자·배급의 성과다. CGV는 최근 투자한 <차이나타운>과 <무뢰한>이 각각 2015년 칸영화제 비평가주간과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면서 작품성까지 인정받는 분위기다. 누군가에게는 비주류영화 시장의 성공신화를 써내려가는 것이겠지만, 애초에 이 시장에서 활동했던 사업자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상영시장을 지배하는 사업자와 누가 경쟁할 수 있겠는가.


과점으로 인한 양극화의 확대, 강력한 상영자본의 틈새시장 진출과 비주류 영화사업자들의 붕괴는 영화진흥정책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시장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성장의 열매가 골고루 분배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영화인들은 진흥기관이 제 역할을 하여 공정한 경쟁과 거래가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진흥을 책임지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시장 독과점과 수직계열화 문제의 해결방안을 함께 고민하자고 요구했지만, 내놓은 결과물은 민간 사업자간의 자율적인 협약을 통한 상생방안 마련뿐이었다. 강제성이 없는 협약 속에서 사업자들은 개별적으로 생존을 고민해야 한다. 그럼에도 영진위는 독과점과 수직계열화를 통한 시장의 성장을 자축하며 잔치판만 벌였다. 심지어 비주류 영화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거대 상영사업자 CGV와 손잡고 수직계열화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해 들어 영진위가 펼치는 정책들은 여전히 영화인들의 요구나 기대와는 다른 것들뿐이었다. 공정시장 조성 대신 대기업 자본의 수직계열화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비주류 영화사업자들에게 지원 대신 칼날을 들이댔다. 비주류 영화시장을 지탱해왔던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은 폐지될 예정이며, 다양성영화 개봉지원 사업은 내홍 끝에 2015년에 한해 한시적으로 추진되나 내년엔 사라질 전망이다. 독립영화 배급·상영의 보루인 독립영화전용관 지원 사업은 지역에 신규 독립영화전용관 1곳을 신설한다는 이유로 기존 독립영화전용관에 대한 지원이 중단되고 지원되는 영화관 수도 축소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영진위는 지난 2월엔 다양한 영화의 상영 기회를 보장해온 영화상영등급분류 면제추천 제도에 관한 규정 개정을 검토하기도 했으며, 최근엔 글로벌국제영화제 육성지원 사업에서 예비심사 결과와 무관하게 지원예산을 결정해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영진위에게 과연 영화진흥의 의지가,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등 비주류 영화를 진흥시킬 의지가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영진위의 영화진흥사업을 위해 집행되는 영화발전기금은 관객이 내는 소중한 입장료의 부과금 등을 통해 마련된다. 관객이 부과금을 내는 이유는 영화예술의 질적 향상과 한국영화산업의 진흥·발전을 위함이다. 최근 영진위가 내놓는 정책들은 관객들이 부과금을 내는 이유와 부합하는가. 영진위는 영화발전기금과 영진위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현재 영화시장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진정으로 고민하며 노력하고 있는지 되물어봐야 할 것이다.


게재 한국영상자료원 독립영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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